"이번 사건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지난해 11월 이후 지속돼온 우크라이나 사태가 17일(현지시간) 발생한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피격이라는 돌발변수의 등장으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피격 사건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네덜란드를 비롯해 호주·영국·독일 등 주요국들이 졸지에 이 사태의 당사국이 되면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더 이상 지역분쟁이 아닌 전세계적인 문제로 확대됐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대서양위원회의 데이먼 윌슨 부회장은 "이번 사건으로 '지역분쟁' 수준에 머물던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주요국의 인식이 급속히 변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사태에 미지근한 태도로 일관해온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드라이브에 한층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전날 대러 제재를 발표하면서 태도개선이 없으면 추가 제재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러시아와의 경제관계 훼손을 우려한 유럽 국가들은 계속 미온적인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친러 민병대가 러시아에서 공급 받은 미사일로 항공기를 격추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희생자가 나온 국가들을 중심으로 대러 제재 강화 요구가 분출할 수밖에 없다. 주러 미국대사를 지낸 제임스 콜린스 카네기국제평화지원재단 이사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기류가 확산하면서 사태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망자 가운데 미국인이 상당수 발견될 경우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직접적 개입 수위도 이전보다 훨씬 높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이 국제사회의 여론을 모아 대러 제재를 주도하는 데서 나아가 사태해결을 위해 보다 직접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만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바마가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의 우방에까지 경제적으로 부담을 줄 수 있는 대러 제재 강화를 선택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사태의 빠른 해결을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를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지에 대한 결정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항공기의 격추가 친러 민병대의 소행으로 밝혀지면 우크라이나의 친러 반군세력 지원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공공의 적'으로 코너에 몰릴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구소련의 영광을 재연하고자 그간 이란 및 시리아 사태 등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에서 번번이 미국 주도의 질서에 반기를 들어왔으나 이번 사건으로 국제사회에 범죄국가로 인식될 경우 푸틴의 행보에 힘이 실리기는 어렵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사설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너무 멀리 왔고 너무 위험해졌다"며 "이것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은 푸틴뿐"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푸틴이 친러 민병대와 거리를 두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국제사회에 자신의 정치력을 과감히 보여줄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푸틴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쉽사리 손을 떼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태가 한층 악화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컨설팅 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회장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올인' 전략을 재검토할 좋은 기회지만 그가 물러설 것으로 생각하기는 힘들다"며 "우크라이나가 반군에 대한 군사 작전을 강화하면 이를 계기로 러시아가 개입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푸틴 행정부와 가까운 러시아의 정치평론가 세르게이 마르코프도 "푸틴은 서방의 요구에 개의치 않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는 여전히 폭도들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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