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구릿빛 얼굴에 주름을 감출 수 없는 중년이지만 그가 중동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34년 전 푸릇푸릇한 청년일 때다. 당시 그가 일했던 현장은 아부다비 인근에서 미국 벡텔사가 시공하는 액화천연가스(LNG)플랜트 현장이었다. UAE의 국영가스공사인 가스코가 발주한 LNG 플랜트를 벡텔사가 수주했고 그는 당시 하도급을 맡았던 현대건설의 말단 현장 근로자였다.
"아무리 눈ㆍ귀ㆍ입을 막아도 밀려 들어오는 모래 바람을 맞고 숨막히는 열기와 싸우며 청춘을 바쳤죠" 비록 가족들과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한국에서 집을 장만하고, 자녀들을 교육시켰으며 한 가장의 역할을 해냈다.
그랬던 그가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사막의 공사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하청업체의 현장 근로자가 아니라 쟁쟁한 경쟁사들을 물리치고 발주처로부터 당당히 직접 공사를 따낸 원청업체 현대건설의 총괄책임자로서다. 그는 수십개의 하도급 업체와 8,000명에 달하는 제3국인 근로자들을 아우르며 2조원짜리 초대형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김 상무의 개인사는 한국 건설업의 성장사이기도 하다. 해외건설 현장에 진출했던 지난 1970년대 한국 청년들의 자리는 인도, 방글라데시 등 제3국 근로자들이 대체하고 있다. 한국 건설업체들은 이제 하청업체가 아니라 테크니몽 등과 같은 유럽계 유수 플랜트 건설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입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전세계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한 대견한 성장이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우리가 달려온 만큼 선진업체들은 한발 더 나가 있다. 우리가 하청업체로 일했던 벡텔은 더 이상 시공을 하지 않고 고부가가치 영역인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M), 금융이 수반된 투자개발형 사업으로 진화해갔다. 수십년 후 김 상무의 후배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자리에서 더 큰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해외건설 신화'의 제2막을 써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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