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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스마트한 추종자' 되기-이영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한니발과 스키피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둘은 여러 면에서 닮았다. 상대 위협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 적국 한복판에 뛰어들어 싸움을 거는 안목과 배짱이 비슷하고, 상식을 뛰어넘는 병법과 전투로 전술사에 큰 획을 그었다는 점에서도 같다. 다만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조국은 달랐다.

한니발은 카르타고의 장수였다. 그는 알프스를 넘어 로마의 숨통을 조였다. 칸나에 전투에서 수적으로 열세했지만 파격적 전술로 로마의 대군을 격파했다. 한니발은 수만명에 달하는 로마군 대부분을 궤멸시키는 성과를 내면서 지금도 많은 국가의 사관학교 교범에 '포위섬멸전'의 대표 사례로 전해진다.

반면 스키피오는 로마의 장수였다. 그는 벼랑 끝에 선 로마의 희망이었다. 칸나에 전투에서 대패했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그는 적장인 한니발의 전략에서 반전을 모색했다. 스키피오는 일단 한니발의 배후를 받치고 있던 이베리아반도를 평정했다. 이후 카르타고 본국이 있는 북아프리카에 상륙해 압박함으로써 로마에 있던 한니발을 고국으로 불러들였다.

둘의 운명은 북아프리카 자마에서 갈렸다. 스키피오는 로마군의 전통적 편제에서 벗어났다. 그리고는 적진의 양 측면을 제압한 후 중앙의 보병을 포위해 무너뜨리는 한니발의 전법을 구사했다. 기병과 보병을 유기적으로 운용해 적의 주력을 에워싸 무력화시키는 한니발의 전략으로 한니발을 공격한 것이다. 결과는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가 대패했고 카르타고는 결국 로마의 속주로 편입됐다.

벌써 2,000년이나 지난 일이다. 그러나 지금도 생존을 위한 기업들의 경쟁은 그때보다 더 치열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1등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첨단기술로 신제품을 만들고 감춰진 소비자의 요구에 선제 대응하는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만이 생존의 법칙"이라고 강조한다. 따라가지 말고, 이끌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옳은 말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모두가 1등이 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점이다. 축적해온 역량으로 글로벌 시장을 이끌고 나가는 기업도 있지만 시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선도기업의 뒤를 쫓아야 하는 기업도 많다. 실제로 대부분의 중소·중견기업은 후자에 속한다.

업종에 따라, 기업에 따라 여전히 '신속한 추종자(fast follower)' 전략이 유효할 수 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앞선 기업을 쫓아가되 그들의 성과는 배우고 실수는 피하는 '영리한' 전술을 수반하라는 것이다. 스마트한 후발주자가 돼 틈새시장을 개척하고 궁극에는 블루오션을 창출해내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많은 학자들은 전술적 측면에서 한니발을 스키피오보다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스키피오였다. 패배의 쓰라림 속에서 적장의 전술을 연구하고 이를 통해 패인과 대응책을 분석하는 집요함이 극적인 반전을 가능하게 했다. 하기야 희대의 전략가인 한니발조차 조금 앞선 시대를 살았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술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지 않던가.

신년 벽두에 '온고(溫故)한 연후에 지신(知新)'을 떠올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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