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의 '철강재벌'로 우뚝 선 앤드루 카네기는 "상속된 부가 자식들의 재능과 에너지를 고갈시킨다"는 신념 아래 자신이 일군 거대한 철강회사를 J.P.모건에게 매각하고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했다. 과도한 부의 상속과 족벌주의(nepotism)에 반대했던 카네기의 정신은 일명 '카네기의 추론(Carnegie conjecture)'으로 불리며 오늘날에도 부와 경영권 세습에 대한 반대 논리를 뒷받침하고는 한다.
카네기의 선견지명은 최근 유독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장자나 양자에게 가업을 물려주는 관행이 유독 강한 일본에서도 요즘 들어 가족경영 또는 '동족경영'의 폐해와 한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본의 대표 가구업체인 오쓰카가구는 올 들어 회장이자 창업주인 아버지와 사장인 딸 사이의 호된 경영권 분쟁을 치르면서 회사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남보다 못한 부녀 간 싸움에 가족경영 체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높아졌다. 지난해에는 115년간 창업주 가문이 경영을 맡아온 일본의 주류업체 산토리홀딩스가 처음으로 외부 전문경영인을 맞이했다. 본격적인 글로벌 경영을 펼치기에 창업주 일가 출신 경영자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굳이 일본의 예를 들지 않아도 가족경영의 문제점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창업주 가문의 그릇된 경영판단과 전횡, 가족 간의 경영권 싸움이 기업에 큰 타격을 입힌 사례를 우리는 무수히 지켜봐왔다. 최근에는 여기에 굵직한 사례 하나가 더해졌다. 한국과 일본에 걸쳐 롯데그룹에서 벌어지는 집안싸움은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총수의 절대 권력, 폐쇄적인 기업문화 등 가족경영의 문제점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역시 카네기가 옳았다. 대물림이 이 모든 문제의 원천인가 보다.
가족경영 체제를 싸잡아 비난하는 목소리가 거세지자 당연한 수순처럼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여러 대에 걸쳐 오너 일가의 가족경영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잡음 없이 성장세를 이어온 사례들은 사실 얼마든지 있다. 1856년 창업 이래 스웨덴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발렌베리 가문이나 1899년 설립된 독일의 밀레사가 대표적이다. 일본 자동차 업체인 도요타자동차는 1995년 도요타 가문이 전문경영인에 자리를 내줬다가 회사경영이 위기에 빠지자 14년 만에 다시 오너 가문을 최고경영자(CEO)로 맞이했다. 위기상황에서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고 단기 실적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는 가족경영 체제의 강점 때문이다. 반대로 최근 역대 CEO들이 연루된 대형 부정 회계 파문에 휩싸인 일본 도시바의 몰락은 전문경영인의 단기 이익 집착이 기업에 얼마나 큰 위험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가족경영 체제가 불가피하게 파국을 낳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전문경영 체제가 무조건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경영의 투명성과 철저하게 준비된 후계 승계 프로그램, 그리고 경영자의 리더십이다. /국제부 신경립차장 kls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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