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발찌, 신상공개, 화학적 거세 등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성폭력 범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성폭력 범죄는 2만2,935건이 발생했는데 지난 2008년(1만5,970건)에 비해 43.6%가 증가한 셈이다. 특히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범은 2008년 3,461명에서 2011년 5,633명으로 4년 사이 62.7%나 늘었다. 양성평등지수도 현저하게 떨어진다. 여성의 경제참여율 및 의사결정권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성격차지수(GGIㆍgender-related development index)는 2006년 92위에서 지난해에는 108위로 떨어졌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순위 15위, 무역규모 8위를 차지하고 있는 경제대국의 위상에는 걸맞지 않은 '초라한 성적표'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여성정책과 성폭력 근절은 우리 정부가 우선순위를 두고 추진해야 할 중요한 국정과제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인 출신으로 행정인으로서 첫 발을 내디딘 조윤선(47ㆍ사진) 여성가족부 장관을 18일 오후 여성가족부 장관실에서 만났다. 조 장관은 "양성평등을 실질적으로 이루려면 '바텀업(bottom-up)' 방식이 아니라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가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솔선수범해야 민간에서도 따라오는 만큼 공공 부문의 의사결정 라인부터 여성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 4급 이상 관리직 여성 공무원을 지난해 9.3%에서 오는 2017년 15%로 확대하는 한편 공공기관별 목표제 수립 및 경영평가 반영 등을 집중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격차가 높은 이유에 대해 조 장관은 "여성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위에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이가 성격차로 나타나는 것"이라며 "여성의 정치참여율(현재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5.7%, 경제활동참여율은 55.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여가부는 ▲4급 이상 관리직 여성 공무원 2012년 9.3%에서 2017년 15%로 확대 ▲공공기관별 목표제 수립 및 경영평가 반영 ▲교육현장에서 여교장과 여교수의 비율 제고를 위해 교육부의 교육역량 강화사업 평가지수에 반영 ▲정부 산하 위원회의 여성 참여율 2017년까지 40% 달성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말 현재 공공기관의 여성 관리자 비중은 평균 11%에 머물고 있다.
조 장관은 양성평등을 실질적으로 이룬 스웨덴처럼 되기 위해서는 바텀업 방식이 아니라 톱다운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판단한다. 정부 차원에서 각 부처의 수장부터 인식을 바꾸고 공기업의 기관장이 변하고 민간 영역에서는 각 기업체 대표가 인식을 전환하면 양성평등은 실현 가능한 미션이라는 얘기다. 구체적인 액션플랜도 소개했다. "안전행정부와 협력해 부처별 목표를 세우고 그 성과를 부처 평가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기획재정부에서는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연도별 경영평가에 여성 관리자 비중을 항목에 넣을 계획이고요. 어떤 정책이든 펼쳐놓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세심하게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여성정책조정회의나 국무회의 등을 통해 각 부처와 긴밀하게 협력해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성별영향분석평가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고려해 차별을 예방하자는 취지의 제도로 지난해 시행돼 각 부처에서 매년 5개 내외 사업에 성별영향분석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지하철 손잡이 높이가 167㎝로 고정돼 여성이 이용하기 어려웠던 점이나 아기를 위한 변기 및 기저귀 교환대가 여성화장실에만 설치돼 남성들이 아기를 돌보기 어려웠지만 성별영향분석평가를 통해 지하철 손잡이 높이가 낮아지고 남자화장실에도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되는 등 개선된 점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정치인 시절부터 현장 우선정책을 펴온 조 장관은 민간 영역의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기업체 대표들과 자주 만나 직접 설득해나갈 생각이다. 그는 최근 만난 폴 월시 디아지오 회장과의 대화를 소개했다. 월시 회장은 아시아에서 전체 임원의 30%를 여성에게 할당하는 한편 한국에서는 매년 10억원씩 향후 5년 동안 여성취업을 위해 지원한다고 밝히면서 조 장관에게 여성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상품과 서비스 구입 여부의 결정권을 여성이 갖고 있는 만큼 여성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월시 회장은 여성 임원을 대폭 늘린다는 생각을 가졌다. 조 장관은 "국회 상임위에서 일할 때도 여성 의원이 한 명이면 의견개진에 제약이 따르지만 숫자가 늘면 여성 의원의 발언권이 높아지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며 "기업체에서도 의사결정 라인에 여성 임원들이 많이 진출해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여성 고객의 니즈에 맞는 상품도 개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ㆍ가정을 양립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도 조 장관의 고민은 깊다. 공공기관에서는 상대적으로 육아휴직제가 잘 정착되고 있지만 민간 영역에서는 육아휴직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팽배해 있는 만큼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게 조 장관의 판단이다. 그는 "육아휴직에 대한 정부 지원은 선진국 수준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재정지원을 늘려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남성 경영진과 임원들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즉 기업체 경영진은 여직원이 육아휴직을 가면 그만큼 인력공백이 생긴다고 판단해 여직원 채용을 꺼리고 여성 본인은 경력에 제약이 될 수 있다는 우려로 섣불리 육아휴직을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조 장관은 최근 공공정책포럼에서 만난 모범사례를 소개했다. "육아휴직에 따른 업무공백으로 결국 대체인력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조찬모임에 오신 기관장들에게 대체인력 문제를 해결한 업체의 노하우를 듣고 싶다고 했더니 한 분이 묘안을 주셨어요. 이 회사는 최근 5년 동안 육아휴직을 가는 직원 수를 분석한 결과 한해 평균 20명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데 신입사원 뽑을 때 아예 10명은 육아휴직을 가는 직원의 대체인력으로 보고 그 업무에 맞게 교육을 시킨다는 겁니다. 사장이 미리 준비하고 인사기획을 하는 거지요. 또 다른 예도 있습니다. 부산항만공사의 경우 여직원이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갈 때 3개월~1년 동안 단기간 일할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회사에 근무하다가 육아 문제로 그만둔 여성, 즉 경력단절 여성을 대상으로 단기간 근무할 분을 찾았더니 어렵지 않게 대체인력 문제가 해결됐다고 합니다. 대체인력을 발탁하고 유지, 관리하는 노하우를 수집해 공유하면 육아휴직에 대한 부담이나 거부감도 불식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조 장관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성폭력 범죄를 근절하는 데도 힘을 쏟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국민 교육과 홍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올해를 '성폭력 예방교육의 원년'으로 규정했다. 특히 16세 미만 아동ㆍ청소년 강간범죄는 법원의 집행유예 선고가 불가능하도록 법정형 상향을 적극 검토하는 한편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매매 범죄의 단속을 실질화하기 위해 경찰의 유도수사 기법 활용을 법제화하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유도수사 기법에 대한 일부 부정적 시선에 대해 그는 "유도수사 기법은 범죄 의도가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합법적 수사로 함정수사와는 다르다"며 "검찰이나 경찰에서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고 법무부에서도 큰 틀에서는 공감하지만 국가기관이 공식적으로 유도수사 기법을 선도하는 데 대한 고민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 시대에 여성가족부 수장으로서 조 장관이 생각하는 여가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여가부의 경우 여성ㆍ가족ㆍ청소년 등 지향점이 다소 다른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여가부 장관으로 내정되는 순간부터 이 모든 일을 아우르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차이를 외면하면 차별을 낳는다'고들 하지요? 차이를 간과하지 말고 서로의 차이를 최대한 존중해 다 같이 잘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바로 이것이 여가부가 지향해야 할 정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가부가 '엄브렐라(umbrellaㆍ우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 공부 잘하는 청소년과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 한부모가정 혹은 다문화가정 아이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 등 이들이 가진 차이를 간과하지 말고 아우르자는 겁니다. 스웨덴에서는 양성평등부가 수십년 동안 운영되다 지금은 사회통합부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사회통합이라는 것은 차이가 있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존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겁니다. 그리고 이 지점이 여가부의 모든 업무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새일센터 200개로 확대… 양질의 여성 일자리 창출 정민정기자 jminj@s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