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금융시장이 낙후돼 있다. 비록 그들이 높은 저축률을 유지했으나 금융산업은 이와 대조적으로 비능률적이다. 한국 금융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높은 저축률을 자랑했다. 한국이 높은 저축률을 유지했던 주요 이유는 젊고 근면하며 생산성이 높은 인구가 밀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열심히 일했고 장래를 위해서 부지런히 저축했다. 이같이 저축한 자금은 주로 뉴욕ㆍ런던 등 주요 국제금융센터에 예치됐다. 다시 말해서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선진국의 주요 글로벌 은행에 저축자금을 예치하고 선진국 은행은 세계 각국의 생산적인 투자사업에 자금을 대출했다.
왜 이 같은 금융중개기능의 분업화 현상이 생겼는가. 그 원인은 아시아 은행은 위험관리 및 대출능력이 취약해서 국내 저축자금으로 해외 투자는 물론 국내 투자에 대해 선별하고 대출할 능력이 부족했다. 반면에 선진국 은행은 위험관리와 대출능력에서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아시아 은행은 저축을 하고 선진국 은행은 투자하는 금융중개기능의 분업화가 이뤄졌다.
실제로 한국에는 생산적인 투자사업에 저축을 중개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은행이 없다. 아시아 은행들의 위험관리가 낙후되고 대출능력이 취약한 것이 19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의 원인이었다. 일부 연구는 아시아, 특히 중국의 과잉 저축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됐다는 주장도 있다. 아시아의 과잉 저축이 세계의 금리를 낮추고 금리하락이 미국의 저(低)신용 차입자들에게 무절제하게 부동산 대출을 쏟아부은 것이 선진국의 금융위기를 촉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래에 한국의 저축률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우리는 더 이상 1980년대, 1990년대의 높은 저축률을 누리지 못한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가 고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과거보다 오래 살고 출생률도 낮아졌다. 이에 따라 우리는 앞으로 국내 저축률이 줄어든 것을 보충하기 위해서 더 많은 외국자금을 유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국내 금융시장을 효율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 은행들도 위험관리를 철저히 하고 대출능력을 키워야 한다.
젊은 노동력이 풍부한 사회는 일반적으로 제조업 부문에서 경쟁력을 갖는 반면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취약한 경향을 보인다. 한편 고령화 사회에서는 저축이 줄어드는 만큼 경제성장이 침체되지 않기 위해 금융시장의 발전이 중요하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삼성전자ㆍ현대자동차 등을 키워냈다. 그러나 경쟁력 있는 글로벌 은행은 없다. 한국에는 왜 삼성전자ㆍ현대자동차에 비견할 수 있는 세계적인 글로벌 은행이 없는가. 2001년부터 정부는 한국 금융시장을 보다 글로벌화하고 국제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 한국을 동북아시아의 주요 금융허브(international financial hub)로 만든다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기 위해서 폭넓은 금융개혁ㆍ규제완화 등을 추진하고 글로벌 은행들을 국내로 유치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지지부진했고 국제금융중심지로서 한국은 홍콩ㆍ싱가포르 등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오히려 국내에 들어왔던 외국은행들도 상당수가 한국을 떠나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금융허브를 추진해온 정부는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다.
최근에 정부는 금융정책을 바꾼 것 같다. 요즘 정책당국은 우리나라 은행들이 해외로 적극 진출해서 외국은행과 경쟁하고 수익을 올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국내 은행들의 저조한 국제금융활동은 개선돼야 한다. 그러나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금융허브가 되기 위해서나 우리 은행들이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위해서도 정부는 광범위한 규제완화와 금융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국내외 금융환경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한국 금융시장의 당면과제는 우리 경제가 발전하고 다양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금융산업이 단순히 기존의 산업 및 기업을 지원하는 것으로 그치기보다 새로운 기업ㆍ산업ㆍ시장의 성장을 지원해야 한다. 우리 금융기관들도 국내 저축뿐 아니라 외국자본을 포함해서 자금을 국내외의 생산적인 투자에 대출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글로벌 은행으로 발돋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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