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인 금의 추락이 계속되고 있다.
한때 금에 열광했던 투자자들은 미국의 경기 회복세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출구전략 시행 전망 속에 서둘러 이를 처분, 주식 등 다른 자산으로 갈아타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에는 금값이 온스당 1,000달러선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1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내년 2월 인도분 금의 선물가격은 1온스당 1,246.20달러를 기록했다. 1700달러선에서 출발한 올 초 대비 36.5% 빠진 것이다. 특히 금값은 연준이 조만간 양적완화 축소를 시작할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진 지난 한 달 동안 5.5% 빠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같은 금값 낙폭은 지난 11월 기준 1978년 이후 최대라며 "금 투자자들이 35년 만에 '최악의 11월'을 보냈다"고 전했다.
그동안 금은 희소성과 세월이 변하지 않는 가치에 달러의 대체재이자 가장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돼왔다. 2000년부터 12년 연속 금값이 상승세를 보인 것도 이러한 속성 때문이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금값은 2011년 9월 1,900달러대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를 기록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기 회복세가 지속되고 유럽도 장기 침체를 벗어날 조짐을 보이면서 금의 매력은 크게 떨어진 상태다. 올 5월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출구전략을 처음으로 시사한 후 6월 한 달 동안 금값은 12%나 급락했다. 그리고 지난달 미국의 3·4분기 국내총생산(GDP) 등 주요 지표들이 예상을 뛰어넘은 호조를 보이자 한동안 잠잠했던 출구전략 조기 시행 가능성이 확산되며 다시 금값에 하방압력을 가하고 있다.
최근 연일 최고기록을 경신하는 뉴욕 증시도 투자자들의 관심을 더욱 금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 프랭크 맥기 인테그레이티드증권사 귀금속 부문 선임딜러는 "미국의 현 상황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없는 본격 회복세의 시작이며 (양적완화가 촉발한) 값싼 달러시대의 종언"이라며 "어떤 상품도 영원히 오르기만 반복할 수는 없다. 금의 하락장세가 시작됐다"고 전망했다. 네덜란드계 ABN암로 은행의 조지렛 볼레 분석가는 더 나아가 "금값 버블이 붕괴될 것"이라며 "내년에는 온스당 1,000달러, 오는 2015년에는 800달러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규모 금 투자로 유명한 존 폴슨의 금펀드는 올해 금 투자비중을 절반가량 축소한 실정이다. 반면 투자처로서의 금의 매력은 상실됐지만 신흥국에서의 실물 수요는 여전히 견고해 장기적으로 반등요인이 남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마켓워치는 "세계 금 수요의 60%를 점유하는 중국·인도는 금을 더욱 원하고 있고 러시아 중앙은행 등은 금 보유량을 늘리는 추세"라며 "금의 시대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세계금위원회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금 수요는 2,896.5톤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호주 ANZ은행은 올해 중국의 금 수입량이 1,050톤으로 전년 대비 80%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외화 유출을 막고자 금 수입을 제한한 인도 역시 12월 결혼 시즌과 내년 봄 힌두교 축제를 맞아 국내 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상태다. 이와 관련, 투자자문사 잭스인베스트의 에릭 더트넘 분석가는 "현 시점에서 장기 수익을 고려한다면 금에 투자하고 단기적으로 치고 빠지기를 원한다면 다른 자산에 집중하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마켓워치는 또 "최근 조지 소로스 등 월가의 거물 헤지펀드 투자자는 증시 약세에 베팅해 금 투자를 늘렸다"며 "현재 증시 호황은 버블 가능성이 높은 만큼 거품이 꺼지면 금의 가치가 재조명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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