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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11월22일] 로버트 클라이브


세 번이나 퇴학 당한 문제아에 18세 백수. ‘대영제국’의 번영을 이끈 인도의 식민지화가 그로부터 비롯됐다. 누굴까. 로버트 클라이브(Robert Clive)다. 클라이브는 문제아였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상업학교에 보내졌으나 성격이 과격해 퇴학을 거듭하며 결국 졸업하지 못했다. 좌절한 청춘의 선택은 인도. 동인도회사의 말단 사무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뎠다. 인도에서 그는 물을 만났다. 수 차례 전투에서 공을 세워 동인도회사 직속 군대의 대위 계급장도 따냈다. 결정적인 기회는 1757년, 28세 때 찾아왔다. 병력 3,200명으로 인도ㆍ프랑스 연합군 8만명을 물리친 것. 인도군 지휘자를 매수한 덕이다. 영국의 인도 지배권이 확고해진 것도 플라시전투로 이름 붙여진 이 전투 이후부터다. ‘하늘이 낸 군인’이라는 평가를 얻으며 뱅골 행정관으로 임명된 후에는 인도의 자치권에 영국의 조세권이라는 이중행정체계로 인도의 부를 빼내갔다.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난 요인을 클라이브에 의한 인도 침탈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 인도 총독인 뱅골 행정관을 두 차례 지내는 동안 그의 재산도 50만파운드로 불어났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연봉 300파운드에 대학교수 자리를 버리고 귀족가문의 가정교사로 들어갔던 시기다. 돈과 명성의 힘으로 하원의원에 당선되고 남작 지위까지 받았던 그는 1774년 11월22일 갑작스레 죽었다. 사인은 분분하다. 자살설과 약물중독설이 엇갈린다. 무엇이 ‘영웅’인 그를 압박했을까. 인도를 착취했다는 여론이다. 작은 섬나라인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든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공평한 기회와 양심. 말썽꾼 클라이브에게 성공할 ‘기회’를 안겨주고 그 결과를 누리면서도 냉엄하게 비판한 ‘양심’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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