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직원인 박모(33)씨는 4년 전 결혼을 하면서 은행 대출을 받아 서울 변두리의 전세 아파트로 분가했다. 빚만 해도 산더미인데 두 딸이 태어나면서 육아부담이 가중됐다. 석 달 전 박씨 부부는 부모님이 살고 있는 수유동 친정으로 복귀를 결심했다.
3년 전 대학을 졸업한 김모(28∙여)씨는 목표했던 대기업 취업에 연이어 낙방하자 지난해 이화여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취업은 사실상 포기한 채 앞날을 고민 중이지만 경제적인 문제에 따른 걱정은 딱히 없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김씨는 부모로부터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집세와 용돈∙생활비를 받아 쓰고 있다.
나이와 무관하게 완벽한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 전까지 부모의 지원 아래 살아가는 캥거루족들이 늘고 있다. 취업난, 내 집 마련에 대한 부담에다 부모가 끝까지 자식을 책임지는 한국 특유의 문화가 더해져 나타난 현상이지만 노후자금 확보의 실패에 따른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일 서울시가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조사' 등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가구주인 부모와 동거하는 30~40대 자녀가 지난 2000년 25만3,244명에서 2010년 48만4,663명으로 10년 만에 91.4% 늘었다.
박씨는 "일단 집값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좋고 함께 사니 아무래도 식비 등의 생활비 소비도 줄었다"고 전했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30~40대 자녀가 부모와 함께 사는 이유에 대해 '자녀부양'이라는 응답이 39.5%로 '경제∙건강의 이유로 부모의 독립생활이 불가능해서'라는 응답(32.3%)보다 7.2%포인트나 높았다.
가족 복지의 수혜자는 주거비 마련 부담에 짓눌린 30~40대만이 아니다. 대학원생 김씨의 경우처럼 부모의 아낌 없는 지원을 당연시하는 문화는 취업기피를 부추기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올 3월 통계청이 발표한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20대 청년층 가운데 비경제활동 인구인 '쉬었음' 인구(큰 질병이나 장애가 없음에도 퇴직 등의 사유로 지난 1주일 동안 쉬는 상태인 사람)는 34만6,000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김씨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안에 태어난 것도, 가족 복지를 자연스레 용인하는 한국의 문화 모두 씁쓸하지만 내게는 다행"이라며 "가기 싫은 중소기업이라도 취업해야겠다는 절박함이 없다"고 말했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모의 희생 정신을 바탕에 둔 가족 복지가 국가의 부담을 덜어준다면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면서도 "갈수록 수명이 느는 와중에 노후세대의 부담 가중이라는 또 다른 사회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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