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대연극을 대표하는 극작가ㆍ연출가 히라타 오리자(47)씨는 일본 문화계에서 손꼽는 '한국통'이다. 한일관계가 그다지 좋았다고 할 수 없는 1980년대 중반 연세대 유학과 이후 연극활동을 통해 그는 한국과 차곡차곡 인연을 쌓아왔다. '현대구어 연극이론'을 제창하며 1990년대 일본 소극장 운동을 주도한 그가 한국인들과 머리로, 몸으로 부대끼며 느낀 한국사회와 한일관계의 참모습은 어떤 것일까.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한국일보가 일본 제휴사 요미우리(讀賣)신문과 함께 마련한 한일 각 분야 대표 인물 연쇄인터뷰의 마지막 차례로 문화분야 히라타를 그가 운영하는 도쿄(東京) 메구로(目黑)구 고마바아고라극장에서 최근 만났다. -1909년 당시를 무대로 한 '서울 시민'이라는 극본을 쓰셨습니다. "'서울 시민'을 썼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그린 작품은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나쁜 군부가 재벌과 결탁해 서민은 압정에 시달린다는 설교조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1년 있으며 한일 역사를 공부하면서 좀 다른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전공이었던 사회사상사는 정치인의 발언 등을 당시 잡지, 신문 등에서 찾아내 보면서 그때 사람들이 정말 무엇을 생각했는가를 더듬어보는 작업이었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당시 식민지 지배에는 일종의 일본 국내 분위기가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러일전쟁에서 이겨 일등국이 됐으니까 식민지 하나, 둘 갖지 않으면 부끄럽지 않냐는 분위기에 밀려 그쪽으로 가버린 것입니다. 그런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식민지 지배는 물론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작가의 일은 도대체 식민지 지배란 무엇인가, 어떻게 지배해, 인간이 억압되고 그 억압에 익숙해져 가는가를 그리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방식으로 역사를 직시하고 싶었습니다." -'한일 과거사를 직시하자'고 말합니다만 한일이 안고 있는 역사 문제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저는 식민지시대의 문제를 과거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인간의 문제로 다루려고 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타자를 지배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휩쓸려 가는 대중의 논리란 것도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그게 극단적으로 되면 나치즘이 된다든지 하는 것이지요. 그런 문제가 지금의 우리 속에도 있다는 시각이 식민지 문제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의 심포지엄 등에 불려가면 한국이 세계 10위권 정도에 들어가는 선진국이 됐는데 당신들이 만약 당시 일본인이었다면 식민지 지배를 하지 않았겠느냐고 물어 봅니다. 또 한국이 지금 경제적으로 동남아시아 등 다른 아시아에 대해 그런 침략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한국인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됐다고 말합니다. 함께 생각하자는 것이지요. 앞으로 한일 지식인들이 식민지주의나 식민지 지배구조는 어떤 것인지, 지금 우리들 속에 그런 구조가 있지는 않은지 하는 과거의 경험에서 배우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 한류 붐 등을 계기로 한일 관계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일 공동 월드컵에 앞서 1997년 월드컵 예선으로 서울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한국 축구팬들이 '함께 프랑스에 가자'는 큰 현수막을 내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일본인들이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잊고들 있지만 신오쿠보(新大久保) 지하철 사고 영향도 컸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5년 한신(阪神) 대지진 때 재일한국인 등의 지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한류붐은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에서 일본 만화 등이 인기 있는 것을 보면서 서로 비슷한 문화라서 일단 좋다고 생각하면 서로 받아들이기 쉬운 부분도 있다고 느꼈습니다. 지금 대학로에서는 일본 극본을 무대에 올리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입니다. 한국 연극인들에게 물어보면 다른 해외 번역물에 비해 이해하기도, 고민이나 기쁨 등을 공유하기도 쉽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지금 좋아진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지난 100년 동안 단절돼 있었을 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에도(江戶)시대 조선통신사가 오면 일본 각지의 학자들이 열광적으로 몰려들던 것이 원래 모습이 아닐까요. 그것이 100년 동안 끊어져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울지 모르겠습니다." -한일 교류가 안고 있는 문제로 무엇을 지적할 수 있을까요. "가장 큰 문제는 앞으로 친해졌기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에 부딪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역사인식일 것입니다. 1919년 3월 1일에 한국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국인은 100% 알지만, 일본인은 1%도 모릅니다. 제가 유학하던 시절, 한국의 일본 유학생은 정말 한국을 좋아하거나 한국에 대해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어서 요리, 탤런트, 한국어, 역사 등 한국에 관한 것을 많이 알았습니다. 지금은 채널이 많아졌습니다. 축구로, 영화로, 한류드라마로, 요리로 친해지고 있습니다. 축구 등을 매개로 인터넷에서 친해져 어느 날 같이 술 마시는 자리에서 일본인이 3월 1일을 모른다고 하면 한국인은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본 학생들에게 한국은 이웃나라이고 연간 수백만 명이 왕래하고 그 숫자가 앞으로 더 늘어날 텐데 상대를 모르면서 좋아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ㆍ고교 수업에서 한국어만이 아니라 국제교류라는 수업을 만들어 상대를 좋아하지 않아도 상관 없으니, 상대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정도는 최소한 이웃에 대한 매너로 알아두자고 서로 가르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일 정부의 지원으로 공동역사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성과가 없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조금씩 만들어가야 합니다. 전면적으로 화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건 무리입니다. 그렇지만 사귀지 않을 수 없는 관계이고 서로 매너 있게 사귀는 방법을 알아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과서 문제도 서로 어쩔 수 없지만 그걸로 끝내지 않고 한국에서는 이렇게, 중국에서는 이렇게 가르친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은 이렇게 가르치지만 한국도 일리가 있다고 말입니다. 한국도 그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경험에서 한일간 문화, 사고방식 등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낍니까. "일본의 한류붐 이야기를 했지만 실은 한국의 일본에 대한 생각, 대일감정의 변화가 훨씬 큽니다. 그것은 실은 최근 20년간 한국이 급속도로 국제화한 결과입니다. 한국이 국제화할수록 일본은 '여러 나라 중의 하나'가 됩니다. 다른 외국과 같이 취급 받는 것이지요. 1980년대까지도 한국에 일본은 매우 큰 존재였고 그 건너편에 미국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미국이 있고, 일본이 있고, 중국이 있고, 유럽이 있고, 러시아가 있는 상태입니다. 일본은 그들의 상대적 위치가 떨어질수록 상대방과 친근해질 수 있는 일종의 일그러진 관계입니다. 과거에는 일본인이라는 딱지를 붙인 뒤 사귀었지만 지금은 개별적으로, 평등하게 사귈 수 있게 됐습니다." -한일 합동연극 작업을 통해 무엇을 얻습니까. "합동연극 '그 강을 넘어서 5월'은 제가 극작ㆍ연출했고 한국에도 작가와 연출가가 있습니다. 배우도 한국 5명, 일본 6명으로 각각 반반 정도여서 한국에서 할 때는 한국어 자막, 일본에서는 일본어 자막을 씁니다. 7, 8년 동안 한일 합동공연이 크게 늘었습니다. 머지 않아 이걸로 작품을 만들어 유럽으로 가져가고 싶습니다. 공연 때문에 유럽에서 1년의 4분의 1을 지내는데 유럽 사람들은 언론 보도만 보고 아직도 한일관계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처럼 매우 사이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바꾸고 싶습니다."
▲1962년 도쿄 출생 ▲1979년 고교 휴학 1년반 자전거 세계일주 ▲1983년 극단 '세이넨단(靑年團)' 결성 ▲1984년 대학재학 중 연세대 1년 유학 ▲1988년 '서울 시민' 등 한국 3부작 공연 ▲1995년 제39회 기사다구니오 희곡상 수상 ▲1997년 제5회 요미우리연극대상 최우수작품상 ▲2002년 제9회 요미우리연극대상 우수작품상 한일국민교류기념사업 '그 강을 넘어서 5월' 공연 ▲2003년 제2회 아사히무대예술상 대상 ▲2005년 한일 우정의해 '그 강을 넘어서 5월' 재공연 ▲2007년 연극 '하주촌(下周村)' 중일 합동공연 ▲현재 오사카대 교수, 내각관방참여, 일본극작가협회 상무이사, 베세토연극제 일본위원장 ▲주요작품 <도쿄 노트> <달의 곶(岬)> <우에노동물원 재재재습격> <그 강을 넘어서 5월> 등 |
후기- 김범수 특파원 히라타 오리자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소극장 고마바아고라에서 두 번 웃었다. 도쿄(東京)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이 소극장은 낡고 정돈되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대학로 소극장과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 분위기일까. 3층 극장 사무실 출입문에 일본어 '지무시쓰(事務室)'보다 한국어 '사무실'이라는 문패를 방문객 눈높이에 맞춰 더 눈에 잘 띄게 붙여 놓은 걸 보고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히라타가 보는 한일관계의 미래는 낙관적이고 건설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를 지향하자'는 상투어로는 담아 내지 못할 구체성이 돋보였다. 한일관계가 최근 수년간 급속히 가까워진 이유로 그는 '한국인의 국제화'를 꼽았다. 한일이 잘 알게 된 것 같지만 조만간 상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서로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거기서 생겨나는 갈등을 막기 위해 적어도 상대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배우는 국제교류교육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인상적이었다. 1980년대 중반 한국 유학 이후 연극활동을 통해 한국과 교류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이 작가를 통해 어설픈 기대나 근거 없는 비관을 털어낸 있는 그대로의 한일관계의 가능성과 한계를 내다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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