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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장충동의 명물인 족발타운. 대부분의 가게는 손님 맞이에 분주한 모습이었지만 두세 집은 굳게 문이 닫혔고 불도 꺼져 있다. 궁금증은 인근 중개업소에서 쉽게 풀렸다.
장충동 S공인의 한 관계자는 "그 가게들은 올봄 신세계그룹에 팔린 집들"이라고 전했다. 그는 "장충동1가에서 기업들이 사들인 집은 시가보다 2~3배 이상 비싸게 팔렸기 때문에 이곳 집주인들은 콧대가 매우 높다"며 "요즘에는 3.3㎡당 3,000만원에도 집을 팔려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3일 기자가 방문한 장충동1가는 일반 부동산시장과는 사뭇 달랐다. 가격이 필지마다 천차만별이어서 평균 시세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또 낡은 다세대 주택들과 고급 저택 및 대기업 관련 시설들이 뒤섞여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처럼 장충동1가 부동산시장이 요지경이 된 것은 최근 수년 동안 벌어졌던 재벌그룹 간의 '땅 전쟁' 영향이 크다는 게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장충동1가는 오래 전부터 삼성을 비롯한 재벌가들이 터를 잡아 지금도 총수 일가의 저택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실제로 이곳에는 삼성ㆍCJㆍ신세계 등 이른바 범삼성가 외에도 재벌가의 저택이나 기업 관련 시설들이 골목마다 자리를 잡고 있다.
특히 지난 2006~2007년께 CJ그룹이 경영연구소 설립을 위해 다가구ㆍ다세대 주택 7필지를 사들이면서 장충동1가 부동산시장이 들썩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뒤이어 삼성그룹도 적극적으로 토지 매입에 나서면서 CJ경영연구소와 마주한 다세대 주택 소유권이 지난해 호텔신라로 넘어갔고 인근 주택은 한국자산신탁이 사들였다.
올 들어서는 신세계그룹도 땅 매입에 뛰어들면서 기존 신세계상품연구소와 신세계건설 사이에 있는 장충동1가 62-59 일대 상가 3채를 올해 4월 사들였다. 불 꺼진 채 문을 닫은 족발집이 바로 그 상가라는 것이다. 당시 신세계그룹의 매입가격이 3.3㎡당 1억원에 육박했다는 게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대기업들이 잇따라 장충동1가 일대 땅을 사들이는 것은 이곳이 서울에서 드문 '명당'으로 꼽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 지역 A공인 대표는 "장충동은 서울에서 가장 시야가 넓고 예전부터 장군이 앉아 군대를 지휘하는 형상의 명당으로 불린다"며 "남향도 아닌 언덕 지대를 재벌들이 좋아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일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대기업들의 땅 매입이 이어지면서 현재 이 일대 부동산은 정상적인 거래가 불가능한 상태다. 어지간한 가격에는 거래가 이뤄질 수 없을 만큼 거품이 생긴 것이다.
장충동 B공인의 한 관계자는 "2000년대 초만 해도 땅값이 3.3㎡당 1,200만원선이었지만 지금은 부르는 게 값이 됐다"며 "족발집 3채가 3.3㎡당 1억원 가까이에 팔렸다는 소문이 나면서 땅 주인들의 기대감은 더 커졌다"고 말했다.
인근 C공인의 한 관계자는 "낡은 다세대 주택을 3.3㎡당 3,000만원씩 주고 팔라고 해도 고개를 저으며 두 배를 부르는 집주인들이 많다"며 "중견기업 사장들이 와서 구매의사를 보이면 아예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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