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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정치'만을 물었지만 그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그의 침묵은 어떤 발언보다 더 큰 파급력을 발휘하고 있다. 10ㆍ26 재보궐선거 이후 20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안 원장이 몰고 올 파장에 정치권은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다. ◇'침묵'으로 대답 대신한 안철수=15일 경기도 수원 광교테크노밸리에 위치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앞. 전날 자신이 보유한 안철수연구소 지분(37.1%)의 절반(이날 종가 기준 지분가치 1,74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안 원장에게 쏠린 여론의 높은 관심을 증명하듯 오전7시께부터 취재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혹 있을지 모를 '정치적 선언'에 대비하기 위해 기자들은 각자 준비한 질문거리를 정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간략했고 그 안에 정치적 의미가 끼여들 여지는 없었다. 약속시간보다 5분여 늦은 오전9시반께 모습을 드러낸 안 원장은 "여기에 오라고 말씀 드린 이유는 밤새 (제) 집 밖에서 추운데 고생하실까 봐 그런 것일 뿐 특별히 기자회견이나 입장을 밝히려고 한 게 아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그동안 강의나 책을 통해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사회공헌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드렸는데 그 일을 행동에 옮긴 것 뿐"이라며 "단지 오래 전부터 생각해온 일을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정치권 진입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에 일단 선을 그은 셈이다. 대학원 앞 입구에서 1분여간 이같이 간단히 입장을 표명한 그는 정치적 의미를 묻는 질문에 일절 대답하지 않은 채 원장실이 있는 대학원 건물 1층 안으로 들어갔다. ◇백마디 말보다 더 큰 여운 남긴 침묵=사실 안 원장에게 쏠린 관심은 사회환원 자체가 아니라 그 행위에 담긴 의도였다. 하지만 자신에게 쏟아지는 많은 의문에 그는 침묵으로 답했고 이는 더 큰 의문을 남겼다. 김수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서울대 관계자들이나 교수들로부터 안 교수가 내년 1학기 예정된 학교 일정을 그대로 하겠다는 풍문이 들려 적어도 내년 총선 때까지 발을 들이기는 곤란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정치적 파장은 분명한데 (이것이 안 원장의 정치참여로 해석해야 하는지 여부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치평론가인 고성국 박사 역시 일각에서 제기되는 안 원장의 신당 창당설(說)에 대해 "신당 창당은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본격적인 정치참여 여부는) 스스로 분명한 말을 하지 않은 만큼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정치권은 의미 두기를 애써 자제하는 모습이지만 언제 휘몰아칠지 모를 안철수발(發) 파고에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다.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은 "(안 원장의 기부는) 매우 의미가 있다"면서도 "다만 기왕 정치를 하려면 과감한 꿈을 갖고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또 "단순히 반(反)한나라당 포위전선의 일각이 되기보다 새 정치 패러다임을 만들겠다는 문제의식을 제대로 표출하기 바란다"는 말로 한나라당과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을 경계하는 발언도 했다. 반면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안철수는 순수한 사람"이라며 "그의 기부를 대권 의혹 등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오버하는 것"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범야권 통합을 주도하는 측이 안 원장에게 끊임없는 '러브콜'을 보내고 있고 안 원장 스스로 앞으로의 정치행보 가능성을 열어둔 만큼 내년도 총선ㆍ대선을 앞두고 안 원장이 모종의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실제 범야권 통합에 참여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오전 서울의 한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안 원장과) 연락을 한번 해서 뵙겠다"고 말해 안 원장의 의중을 살피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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