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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월가 최고의 스타는 벤자민 로스키(42) 뉴욕금융감독국 국장이었다. 그는 지난 6일(현지시간) 영국의 스탠더드차타드(SC) 은행의 2,500억달러에 달하는 이란과의 불법거래 혐의를 발표해 파문을 일으켰고, 결국 SC은행이 3억4,000만달러의 벌금에 합의함으로써 완승을 거뒀다. 뉴욕금융감독국은 뉴욕주 검찰총장을 역임한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지난해 10월 탄생한 초년생 기관. 뱅커들 사이에서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감독기관이었지만, 이번 사건 하나로 전세계 금융시장에 확실하게 각인됐다. 로스키는 쿠오모 검찰총장시절 보좌관을 지낸 인연으로 초대 뉴욕금융감독국장에 임명됐다.
최근 월가는 뉴욕의 사법기관들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과거에도 대형 금융범죄를 적발해 명성을 떨치려는 야심에 가득찬 검사들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사법당국들이 한꺼번에 달려 드는 경우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이와 관련, 가뜩이나 사법당국간의 경쟁이 치열한데, 신생기관인 뉴욕금융감독국 마저 가세함으로써 소환장 발부와 벌금이 기록적인 수준까지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가를 관할하고 있는 뉴욕의 사법당국은 맨해튼 지검, 뉴욕남부지검, 뉴욕검찰청, 그리고 SC사건을 터트린 뉴욕금융감독국 등 4곳에 달한다. 이들 사법기관들은 최근 굵직한 사건들을 잇따라 터트리고 있다. 싸이러스 밴스가 수장으로 있는 맨해튼 지검은 네덜란드 ING은행이 이란ㆍ쿠바 등의 고객들을 위해 미국은행을 통해 수십억달러를 불법송금한 혐의를 적발해 지난 6월 6억1,900만달러의 벌금을 물렸다. 또 모기지 사기혐의를 적발해 뉴욕의 한 은행을 기소했다. 뉴욕남부지검을 이끌고 있는 프릿 바라라 연방검사는 지난 2월 월가의 저승사자로 일컬어지며 타임지의 커버스토리로 다뤄졌다. 그는 월가의 내부거래를 파헤쳐 헤지펀드계의 거물 라즈 라자라트남, 전 맥킨지 최고경영자(CEO) 라자트 굽타 등 71명을 기소해 67명의 유죄를 받아냈다.
에릭 슈나이더만이 이끄는 뉴욕주검찰청은 최근 이탈리아 최대은행인 유니크레디트그룹 계열의 히포페어라인스방크(HVB)가 이란과 불법거래한 혐의를 잡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리보 조작 관련 사건도 다루고 있다. 또 펩시코, 몬스터베버리지, 파이브아워 등 3개 에너지 음료 회사들에 대해 과대광고 혐의를 잡고, 소환장을 발부했다.
연방검사 출신으로 쿠오모 주지사의 수석보좌관인 스티븐 코헨은 사법당국들의 경쟁에 대해 "뉴욕이 꽉 찬 모래통 같다"며 "일등이 아니면 꼴찌가 되는 자동차 경주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사법당국들의 경쟁을 바라보는 월가의 은행들과 기업들의 심기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검사들의 야망과 금융위기 이후 월가를 불신하는 대중들의 정서가 결합돼 무더기 기소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미 상공회의소에서 자본시장 경쟁력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톰 쿼드 부사장은 "시장을 공정경쟁을 보장하는 대신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려고 검사들이 경쟁했던 엘리엇 스피츠 검찰총장시절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프린스턴대학과 하바드 로스쿨을 졸업한 스피츠는 지난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뉴욕주 검찰총장을 지내며 메릴린치와 시티그룹 대형투자은행의 투자리포트 작성관행을 조사해 14억달러의 벌금을 물리는 등 월가를 떨게 했다. 그는 이러한 명성을 바탕으로 2007년 뉴욕주 주지사에 당선됐었다. 스피츠는 "민간이나 공공부문 모두 경쟁은 좋은 것"이라며 "공익을 증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법기관들의 경쟁이 수사에도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로스키의 SC사건처리만 하더라도, 독주를 함으로써 월가 은행들에게 사법기관들이 더 이상 단합된 전선을 펼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줘 앞으로의 조사에 또 다른 어려움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로스키는 정작 "금융위기는 뉴욕 금융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공정하고 강력한 시장임을 확인시킬 수 있도록 정부당국이 협조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줬다"며 사법당국간 공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로스키와 바라라 연방검사, 슈나이더만 뉴욕주 검찰총장은 종종 만나고, 모기지 사기사건 수사 등에서는 서로 협력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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