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호주가 7년간 끌어온 경제동반자협정(EPA) 교섭의 주요 사항에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은 내년 발효를 목표로 세부조율을 거쳐 올여름 협정에 공식 서명할 계획이다. 일본은 호주와의 합의를 미국과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교섭 타결을 이끌어내기 위한 카드로 활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7일 일본이 4위 교역 상대국인 호주와의 EPA 교섭에서 큰 틀의 합의를 이뤘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 1차 내각 당시였던 지난 2007년 교섭을 개시한 지 7년 만에 아베 2차 내각에서 교섭을 마무리 짓게 됐다. EPA는 상품이나 물품뿐 아니라 투자와 인적교류 등 폭넓은 분야에서의 자유로운 국가 간 이동을 강조하는 글로벌 경제협력의 틀이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호주산 쇠고기에 부과하는 관세율을 현행 38.5%에서 20%대로 낮추고 호주는 일본산 중소형 승용차에 대한 수입관세(5%)를 철폐하기로 했다. 대형차에 부과하는 관세는 협정발효 후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없애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신문은 전했다.
특히 일본에서는 호주와의 EPA 합의가 교착상태에 빠진 미일 간 TPP 협상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미국이 쌀과 쇠고기 등 일본 측 민감품목의 관세 전면철폐를 요구하면서 양국 간 협상이 평행선을 그리는 가운데 호주가 쇠고기에 대한 관세부과를 일정 부분 인정한 것이 미일 간 협상에서 일본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일본 측은 보고 있다. 아마리 아키라 경제재정상은 6일 "호주와의 EPA 합의가 이뤄지면 호주산 농축산물에 대한 관세율이 미국산보다 유리해진다"며 미국이 일본 시장을 호주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관세를 대폭 낮추는 선에서 조기타협에 나설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호주산 쇠고기는 일본 시장에서 35.6%를 차지해 미국산 쇠고기(15.2%)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관세율 철폐를 고집하느라 TPP 교섭이 진척되지 못할 경우 관세율 인하로 가격경쟁력이 커지는 호주산에 밀려 미국산 농축산물이 일본 시장에서 설 땅을 잃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일 양국은 7일 도쿄에서 웬디 커틀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가 참석한 가운데 TPP 관세협의를 재개했으며 이번주 안에 마이클 프로먼 USTR 대표도 일본을 찾을 예정이다. 미국은 오는 11월 중간선거 때까지 TPP 교섭타결 성과를 내기 위해 24일 미일 정상회담까지 큰 틀의 합의를 도출해내려 하고 있다. 다급한 미국의 입장과 미국의 농산물 수출 경쟁국인 호주의 EPA 합의가 미일 간 TPP 교섭타결을 앞당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밖에도 일본은 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 성장전략의 일환으로 무역 자유화에 부쩍 공을 들이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13개 국가 및 지역과 EPA·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으나 이들 국가가 일본과의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못 미쳐 우리나라(35%)나 미국(38%)보다 부진하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이 주도하는 TPP, 아세안과 한중일 등을 아우르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유럽연합(EU)과의 EPA 등을 체결해 2018년까지 이 비중을 7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현재 일본은 10개 국가 및 지역과 무역 자유화 교섭을 추진 중이며 올해 안에 터키와의 EPA 교섭도 개시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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