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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인 바이오시밀러(복제약) 기업인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 무역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오석송 메타바이오메드 회장, 재단법인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을 설립한 전원태 MS CORP 회장은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에겐 과거 자살을 시도한 아픔이 있다.
서 회장은 자금압박을 받다가 경춘국도에서 북한강을 향해 돌진했지만 다행히 차만 부서졌다. 오 회장 역시 수면제 30알을 들고 선친이 묻힌 경기 송추 운정공원묘지에서 밤을 새우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전 회장은 젊은 시절 회사가 부도나자 경상남도 통영 앞바다 무인도인 대덕도로 들어가 곡기를 끊었다. 2주가 지날 즈음 그는 "야 이놈아, 니가 바보가!"라는 돌아가신 조부의 호통에 정신을 차렸다 한다. 전 회장은 사재 20억원을 출연해 대덕도 인근 죽도에서 무료 재기기업인캠프를 운영 중이다.
기업인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자살을 생각했거나 시도했던 쓰라린 추억을 안주 삼아 내놓는다. 며칠 전 경기도 김포 공장 텃밭에서 기른 싱싱한 고추를 한 움큼 들고 와 풋풋한 점심을 함께한 김원길 안토니 대표도 십여년 전 돈이 말라버려 한강에 뛰어들려했던 비화를 들려줬다.
실패기업인 방치 경제·사회적 손실
성공한 중소기업인 치고 드라마틱한 자살 스토리 하나 없는 이는 아마 없을지 싶다. 어찌 보면 한국에서 중소기업 경영은 목숨 걸고 하는 리얼 서바이벌게임이다. 일부 악덕 기업주를 제외하곤 '실패=죽음'일 정도로 사장과 그 가족은 모든 걸 잃는다.
부도기업인재기협회에 따르면 실패기업인의 60%가 일용직 근로자가 된다. 나머지 20%는 폐인이나 노숙자로 전락한다. 경제적 생명은 물론 사회적 호흡마저 멎어 버리는 것이다.
정직하게 기업을 경영한 사람일수록 사재탕진과 가족 연대보증으로 빚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가족이 해체되는 건 다반사다. 이들에게 실패는 주홍글씨요, 재기는 신기루다.
창업 2년이 지나면 법인 둘 중 하나 남짓은 폐업(44%)을 한다. 5년 지나면 세 곳 중 둘(67%)이 없어진다. 이중 75%는 연대보증 채무를 지고 있어 실패기업인들은 신용불량자가 안 될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이들에게 매우 인색하다. 특히 채무자에게 전혀 관대하지 않다. 셰익스피어 단편 중 하나인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태인 고리 대금업자 샤일록처럼 은행 등 채권자들은 가혹하기만 하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미국은 실패 경험을 소중한 자산으로 본다.
한정화 당시 한양대 경영대학장(현 중소기업청장) 등과 함께 <실패 기업인 재도전 지원체계 구축방안 연구>를 쓴 이영달 동국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에서는 3번 이상 실패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며 "벤처캐피털도 실패경험자를 오히려 우대하는 경향"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미국은 투자, 한국은 융자 위주로 창업자금 조달을 하는 특성이 있다.)
국세청 통계를 보면 지난 2001년부터 10년간 폐업한 법인은 무려 41만7,000개다. 이렇게 많은 실패기업인들의 경험과 지식이 그냥 묻히도록 방치하는 것은 크나큰 경제적·사회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유럽 중소기업법 제2원칙은 '파산에 직면한 정직한 기업가의 보호 및 재기지원'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정직한 실패가 용인되는 사회, 실패가 자산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폐업에 따른 손실을 줄이고 실패비용을 낮춰 창업을 더욱 북돋을 수 있다.
회생컨설팅 키워 재기·퇴출 도와야
다행히 최근 들어 기업회생협회가 출범하고 기업회생경영협회가 사단법인으로 등록되는 등 기업회생 컨설팅과 제도개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차제에 정부는 창업부터 성장·쇠퇴·재창업에 이르는 기업생태계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정책적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부실예방과 한계기업 정리를 위해 회생컨설팅 서비스 부문을 키워 기업 재기와 퇴출을 돕고 컨설팅 산업 자체의 경쟁력도 높여야 한다.
정직한 실패를 포용하고 기업인의 재기를 돕는 영리한 민족만이 창조경제를 만들 수 있다.
/이규진 성장기업부장 sk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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