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날카로운 칼을 식탁에서 사용하는 일을 금한다.’ 1637년 5월13일, 프랑스 재상 리슐리외 추기경이 내린 명령이다. 당장 반발이 따랐다. ‘그렇다면 음식을 어떻게 먹으라는 말인가.’ 추기경이 답을 내놓았다. ‘끝이 무딘 칼은 사용해도 무방하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서 악의 화신으로 그려졌을 정도로 절대권력을 휘둘렸던 리슐리외는 왜 이런 명령을 내렸을까.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식사를 마칠 때마다 날카로운 칼로 이를 쑤시는 한 성직자가 못마땅했기 때문이라는 설과 걸핏하면 만찬장소가 칼부림 장소로 변하는 세태를 치유하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상존한다. 어느 편이 맞는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점은 이때부터 식사예절이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 우선 식탁용 칼의 끝이 원형으로 바뀌었다. 칼끝으로 고기를 찌를 수 없게 되자 대용품인 포크의 사용이 크게 늘어났다. 특히 루이 14세가 결투를 최소화하기 위해 1669년 뾰족한 칼의 식탁용 사용을 금지한 후 끝이 둥근 칼과 포크의 조합이 자리잡았다. 일부 성직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손가락이 있는데 도구가 왜 필요한가’라며 저항했으나 소용없었다. 전반적인 생활수준 향상으로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식사용 도구의 사용이 일반대중으로 퍼졌기 때문이다. 단검과 손가락에 의지하는 식사습관의 도구화는 급속한 문명화로 이어졌다. 맨손으로 마음껏 고기를 뜯어먹고 포식하는 습성은 야만으로 치부된 반면 식사도구 사용은 절제의 미덕으로 칭송 받았다. 식사용 나이프의 정착을 문명화의 과정으로 설명하는 시각도 있다. 서구식 식습관과 매너가 자리잡은 것은 어야 300여년 남짓. 장구한 역사를 지닌 동양의 젓가락 문화와는 상대가 안 된다. 21세기 들어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동양경제권의 약진도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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