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기 총재가 18일(현지시간) "유로존 경기를 위해 필요하다면 뭐든 할 준비가 돼 있다"며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시장에 약발이 먹히지 않은 탓이다. 지난해 똑같은 구두개입만으로 유럽 채권시장의 불안감을 일시에 진정시켰던 점을 감안하면 천양지차의 반응이다. 어차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출구전략을 검토하고 있는 마당에 ECB의 행보는 금융시장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드라기 총재는 이날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스탠리 피셔 이스라엘 중앙은행장의 퇴임 기념식에 참석해 "유로존 경기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전통적 방법이든 비전통적 방법이든 할 수 있는 조치를 적절히 구사할 것"이라며 "많은 대책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전에 언급했던 시중은행이 ECB에 예치하는 자금에 대한 금리를 마이너스로 하는 방안이나 중소기업 자금 지원, 유로 은행에 대한 유동성 지원기간 연장 등의 방안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그의 발언에도 유로화 가치가 이날 장중 한때 약간 떨어졌을 뿐 금융시장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드라기 총재는 지난해 유로존 국채시장이 위기에 빠졌을 때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겠다"는 구두개입만으로 시장 불안감을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연준이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을 흘리면서 상황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ECB의 말이 싸게 먹힌다'는 제목의 분석에서 "드라기 총재가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고 경기침체에 대처할 무기가 있다는 말도 다소 공허하게 들리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WSJ는 연준에 이어 일본은행(BOJ)까지 전례 없이 공격적인 양적완화를 단행했을 때는 드라기 총재가 굳이 행동에 나서지 않더라도 발언에 무게감이 실렸으나 연준의 출구전략 실행이 기정사실화하면서 여건이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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