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위안화 평가 절하에 불안해진 신흥국들이 자국 통화 절하로 맞불을 놓으면서 환율 전쟁이 갈수록 확산될 태세다. 가뜩이나 세계 경기 침체와 저유가로 신음하는 신흥국들은 위안화 가치 하락으로 수출 경쟁력까지 위협 받자 앞다퉈 통화 가치를 내리며 자국 경제 보호에 나섰다.
22일(현지시간) CNBC 등 주요 외신은 "통화 절하 전쟁이 시작됐다"며 최근 동화를 평가절하한 베트남을 비롯해 터키 등의 신흥국들도 잇따라 통화 절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줄리언 칠링워스 라스본 브러더스 수석매니저는 "바닥을 향한 위험한 경주가 본격화되고 있다"며 "디벨류에이션(평가 절하) 경쟁이 점점 더 심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 중국 무역 적자가 갈수록 늘고 있는 베트남은 이미 지난 19일 동화 평가절하를 단행했다. 베트남 중앙은행은 동화 환율을 달러당 2만1,890동으로 고시하며 동화 가치를 1% 가까이 내렸다. 올 들어 지금까지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193억달러(23조442억원)에 이르는 베트남은 위안화 약세로 상대적으로 의류·전자제품 등 자국 제조업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최대 산유국 카자흐스탄도 20일 고정환율제를 폐기하고 자율변동환율제를 도입해 위안화 절하에 맞대응했다. 저유가 직격탄을 맞은 카자흐스탄은 최근 중국과 러시아의 통화 하락으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지자 자유변동환율제를 전격 도입해 통화 가치 하락을 유도했다. 도입 첫날 달러 대비 텡게화 가치는 23%나 급락했다.
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도 조만간 환율 전쟁에 가세할 것으로 예측했다. CNBC는 한국 원화가 올 들어 달러화 대비 9% 가까이 떨어졌지만 올 성장률이 2.5%에 그치는 등 경기 둔화 우려가 커 원화 가치를 더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중국에 금·백금·다이아몬드 등 귀금속을 수출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터키도 조만간 평가절하에 나설 것으로 점쳐진다.
한편 미국은 최근 위안화의 급격한 가치 변동과 관련해 중국의 환율 정책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혔다. 잭 루 재무장관은 21일 왕양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은 중국이 새로운 환율 체계를 어떻게 시행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중국은 수출보다는 가계 소비가 주도하는 경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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