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인가 게임인가 아니면 보안인가. 지난 1990년대 말 대학을 갓 졸업한 네 명의 PC통신 동호회 회원들은 인터넷 시대를 뜨겁게 달굴 아이템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검색 포털과 온라인 게임의 대세를 점치는 친구들 사이에서 이순형(43ㆍ사진) 라온시큐어 대표는 자신 있게 말했다. "결국 인터넷 시대의 핵심은 보안이야."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하고 연출가를 꿈꾸던 이 대표가 정보기술(IT), 그 중에서도 '보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는 자신이 운영하던 PC통신에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해커 때문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국내 1세대 보안 전문가로 불리는 이 대표는 대학 시절 게임 정보를 공유하는 게임전문 PC통신을 운영했다. 그는 "용산에서 컴퓨터 조립 아르바이트를 하다 PC통신을 운영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시작했다"며 "모뎀이랑 컴퓨터를 집에다 가져다 놓고 24시간 관리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소소하게 게임 정보가 공유되던 공간에 게임의 새로운 버전을 해킹하거나 단계를 뛰어넘는 방법에 대한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처음에는 게임 관련 해킹 방법이 올라오다 나중에는 게임과 관련 없는 상용프로그램에 대한 해킹 방법이 올라왔다"며 "해커들이 공유하는 해킹 방법에 관한 글을 관리하고 유심히 살펴보다 보안 쪽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보안에 대한 작은 관심은 이내 큰 꿈으로 자랐다. 이 대표는 온라인상에서 알게 된 보안 전문가들, 지인들과 합심해 보안업체를 창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문제는 자금이었다. 그는 "의기투합해 보안 벤처를 차리려고 했으나 자금이 없어 쉽지 않았다"며 "이곳저곳으로 투자를 알아보러 다니던 중 미래산업의 사내벤처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미래산업의 보안연구소에서 소프트포럼의 기초를 다지고 1999년 미래산업의 자회사로 분사했다.
소프트포럼은 인터넷 뱅킹 바람을 타고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 이 대표가 예견했듯이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고 관련 산업이 발달할수록 보안의 중요성이 날로 커져갔다. 하지만 그는 "사업이 고도화되고 안정궤도에 올랐지만 여전히 해킹사고는 끊이지 않았다"며 시만텍이나 맥아피와 같은 세계적인 보안기업도 매번 당하는 해킹사고를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이 대표는 '이이제이(以夷制夷)', 한마디로 잘 뚫는 사람이 잘 막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해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소프트포럼에도 뛰어난 해커가 있었는데 해킹을 잘하니까 취약점도 잘 알고 더 튼튼하게 보안할 수 있었다"며 "해커를 나쁜 해커(크래커)가 아닌 좋은 해커(화이트해커)로 활용하면 보안산업이 발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터무니없이 적은 국내 해커 수였다. 이 대표는 "미국의 경우 해커들이 발견되면 정부나 대기업에서 고액의 연봉을 주면서 능력을 키워줬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경우 해커로 한번 찍히면 잠재적 범죄자로 생각해 오히려 재능을 죽이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이 대표는 2008년 국제해킹방어대회 코드게이트의 초대 조직위원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국내 화이트해커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 대표는 한창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회사를 그만두고 홀연 해외로 떠났다. 그는 "회사를 경영하면서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많았다"며 "늦었지만 가족과 함께하고 싶어 해외이민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회사를 떠났지만 그가 완전히 산업에서 손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이 대표는 창업을 준비하는 스타트업을 도와주기 위해 벤처캐피털을 설립했다. 그는 "금융인 출신이 아니라 직접 창업을 해본 사람으로서 내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며 "보안업체 6개, 인터넷 업체 4개의 멘토를 맡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안과의 질긴 인연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이 대표는 4년간의 이민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말 투자했던 회사들을 합병해 다시 보안업체의 대표로 돌아왔다.
그가 수장을 맡은 라온시큐어의 목표는 모바일 보안 분야에서 전세계 넘버원 업체가 되는 것이다. 라온시큐어는 모바일 단말 관리(MDM)부터 인터넷 뱅킹 업무에 필요한 암호인증, 가상 키패드, 백신까지 모바일에서 할 수 있는 통합적인 보안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이 대표는 "라온시큐어로 합쳐진 회사의 면면을 보면 가장 잘하는 분야가 모바일 보안이었다"며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중점적으로 투자해 국내에서는 5년 안에, 세계에서는 10년 안에 손에 꼽히는 모바일 보안 전문업체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PC 보안과 모바일 보안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고 모바일 보안 시장이 주목 받은 지는 1~2년에 불과하다"며 "3년쯤 지나면 모바일 보안 시장이 더욱 성장하고 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라온시큐어의 올해 매출목표는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한 190억원이다. 또 여러 회사가 합쳐져 만들어진 만큼 앞으로도 기회가 있으면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회사를 키워나갈 계획이다.
모바일 보안 외에 라온시큐어가 집중하는 분야가 하나 더 있다. 이 대표가 소프트포럼에 있을 때부터 강조했던 '화이트해커'다. 라온시큐어는 지난해 10월 설립한 라온 화이트햇센터를 통해 화이트해커 양성에 앞장서고 있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보안 담당자들이 해커의 눈으로 보안을 할 수 있도록 실무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대학생이나 취업 준비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체험단도 운영하고 있다. 한 달에 30명, 1년에 360명씩 3년간 1,000명 이상의 화이트해커를 키워 대한민국 화이트해커 양성의 메카가 되는 게 목표다. 이 대표는 "화이트해커가 공공기관이나 기업 등 주요시설에 존재하면 공격자보다 먼저 취약점을 찾아 사이버 테러로 악용하려는 시도 자체를 차단할 수 있고 만약 해킹사고가 터져도 빠르게 대처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대표는 "최근 화이트해커의 필요성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어 기쁘지만 양성만큼 중요한 것이 그들이 활동할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화이트해커는 자원봉사자가 아닌 만큼 적절한 보상과 명예를 보장해야 한다"며 "육성책만큼 화이트해커의 고용 수준이나 열악한 처우 등을 개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우리나라 보안업체가 세계 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업체를 대표하는 기술이나 솔루션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보안업계가 타깃으로 삼아야 하는 시장은 국내가 아니라 전세계"라며 "해외 시장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문어발식 사업 확장보다는 제일 잘하는 분야에 집중해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대표는 라온시큐어 수장과 함께 벤처전문기술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그는 "겉으로 보이는 창업 열기에 비해 실제로 창업하려는 학생이 많지는 않다"며 "생각만 하지 말고 과감히 실행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투자처만 쫓아다니다 창업에 실패하는 벤처를 많이 봤다"며 "투자자보다 자신이 하려는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멘토를 먼저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라온시큐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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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형 대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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