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일 그리스의 운명을 가를 국민투표가 예측불허의 초접전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제채권단의 '증세 등 경제개혁 단행을 전제로 한 구제금융 지원' 요구 수용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각각 찬반 투표를 던지겠다는 여론이 시시각각 뒤바뀌며 박빙 수준에 이르렀다. 주채권국인 유럽연합(EU) 재무장관들은 지난 1일(현지시간) 회의를 열어 협상재개 여부를 국민투표 후 결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채권단의 기대대로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올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프랑스계 투자은행 PNP파리바가 최근 전문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구제금융 조건 수용 찬반 여론이 호각지세로 양분된 것으로 집계됐다. 그리스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 '찬성'하겠다는 의견은 47.1%, 반대하겠다는 의견은 43.2%로 나타났다. 오차범위(±3.1%포인트)를 감안하면 초접전 수준이다. 더구나 '잘 모르겠다'거나 '투표에 불참하겠다'는 부동층이 8.1%에 달해 이들의 막판 표심에 따라 결과가 뒤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다.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 민심을 제대로 반영했는지는 미지수다. 조사기관이나 시점마다 여론의 편차가 사뭇 다르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프로라타가 지난달 28~30일 실시한 설문에서는 반대 의견이 57%에 달했고 그리스 현지 야당성향 매체인 EFSYN이 이번주 발표한 설문조사에서도 반대(46%)가 찬성(37%)을 압도해 BNP파리바 측 설문과는 정반대 흐름을 보였다.
투표현장에는 또 다른 변수가 잠복해 있다. 유권자들의 응집력이다. 표면적인 여론 비중이 더 높은 진영이라도 상대적으로 응집력이 떨어져 투표 참여율이 낮다면 반대 진영의 투표 수에 압도당할 수 있다. 현재 찬반 진영은 주로 지지정당에 따라 뚜렷하게 갈린다.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의견의 비율은 급진좌파 여당인 시리자당(77%), 극우보수 황금새벽당(80%), 공산주의 정파인 KKE(57%) 지지자들 사이에서 압도적이었다는 게 지난달 28~30일 그리스 언론매체 저자일보의 설문 결과다. 이에 비해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의견은 중도우파인 신민주당(65%), 중도성향 정파인 포타미(68%), 중도좌파 범그리스사회운동주의 정파인 파속(65%) 등이다.
설령 국민투표에서 찬성표가 많이 나와 파국을 피한다고 해도 그리스 사태는 길고 지루한 게임이 될 수 있다. 우선 그리스는 EU 채권단 등과 함께 지난달 말로 만료된 2차 구제금융에 이은 3차 구제금융 협상을 벌여야 한다. 그리스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한 체납 해소 여부도 가려야 한다. 어렵게 3차 구제금융 협상을 타결했다고 해도 이후 해당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따라올 엄격한 경제개혁 요구를 그리스 정부가 이행할지와 해당 개혁의 성공 여부를 놓고 긴 공방이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3차 구제금융 실행기간이 2년으로 거론되는 만큼 이 같은 줄다리기가 최소한 2년은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 및 공공정책학 교수는 1일 경제매체 마켓워치에 올린 글에서 IMF의 구제금융에도 경제개혁에 실패한 우크라이나 사례를 들며 채무국이 자발적으로 마련하지 않고 채권단 등 외부에서 강요한 경제개혁 프로그램은 효과적이지 않다며 그리스가 주도하지 않은 경제개혁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임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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