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며칠 후 고용노동부는 스펙 타파 열풍을 감안한 듯 스펙초월 채용시스템 도입 방침을 밝혔다. 이를 위해 '스펙초월 청년취업센터'를 설립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센터는 직업교육과 취업알선을 동시에 해주는데 입소를 지원하는 청년은 열정과 잠재력만으로 뽑겠다는 것이다.
기자는 열정과 잠재력을 어떻게 측정하고 평가하는지 고용부 관계자에게 구체적인 선발 방식을 물어봤다. 그는 지원자에게 스펙 위주 지원서가 아닌 '역량기반 지원서'를 내게 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 역량기반 지원서는 지면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 대학 시절 활동경험을 적도록 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결국 봉사활동ㆍ인턴ㆍ수상경력ㆍ자격증과 같은 스펙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스펙을 초월하겠다는 채용시스템이 스펙을 요구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진 셈이다.
이 같은 아이러니에 빠진 이유는 스펙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펙은 구직자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보여주는 사람 설명서다. 이 설명서를 100% 배제한다면 기업은 해당 인재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 열정과 잠재력이라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설명서를 통해 드러난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직무에 부합하는 '정확한 스펙'을 요구하는 일이지 스펙 자체를 초월하는 일이 아니다.
가령 나이, 성별, 가족의 직업, 학력 등 실력과 상관없는 스펙을 묻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그러나 업무와 관련 있는 자격증ㆍ인턴ㆍ봉사활동 등의 스펙을 쌓는 것은 필요하고 그로 인한 치열한 경쟁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정부의 노력으로 열린 채용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스펙을 초월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열정과 잠재력만으로 뽑는다'와 같은 감성적인 구호를 외치는 것은 불필요한 혼란만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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