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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이준익 감독의 영화 '왕의 남자'가 개봉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환호했지만 정작 원작 연극 '이'(爾)의 팬들은 적잖이 실망했다. 원작의 주는 감동을 영화가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와 연극을 단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연극 마니아들에게는 '왕의 남자'의 감동은 연극무대에 뒤져도 한참 뒤졌던 듯 싶다. 올해로 연극 '이'가 초연된 지 10년이 된다. 그런데도 여전히 관객들은 최고의 연극 중 하나로 '이'를 꼽는다. 강산이 변한 세월 동안 그 인기는 변하지 않은 셈이다. 10주년을 기념해 김뢰하ㆍ오만석ㆍ이승훈ㆍ조희봉 등 원년 멤버들이 다시 뭉쳐 한 달도 못 되는 짧은 기간 동안 특별공연을 진행해 기대를 모은다. 이번 공연은 스스로를 위한 '축제'의 의미다. 최근 서울 중구 남산창작센터에서 진행된 연극 '이'의 연습실 공개 현장은 그러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겨울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많은 취재진이 몰리며 관심을 끌었다. 특히 오랜만에 '공길' 역으로 출연하는 배우 오만석에 대한 관심도 대단했다. 이번 작품은 극단 우인이 뮤지컬 제작사로 유명한 오디뮤지컬컴퍼니와 손잡고 작업한 탓에 더욱 탄탄하게 준비되고 있었다. 배우들은 추운 날씨에도 허연 입김을 내며 실전 같이 연습을 진행했다. 연산군을 연기한 배우 김뢰하는 특유의 카리스마를 뿜어냈고, 오만석은 영화 '왕의 남자'에서 이준기가 연기한 '공길'과는 다른 느낌으로 자신의 개성을 발휘했다. "인생 한바탕의 꿈인데 그 꿈이 왜 이리도 아프기만 한 것이냐?" 이는 죽은 어미에 대한 그리움으로 뒤틀리고 비뚤어진 폭군 연산의 유명한 대사다. 허공을 바라보며 넋 나간 사람처럼 두 팔을 흔드는 연산의 모습은 오래도록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참고로 연극 제목인 '이'(爾)는 조선 시대에 왕이 신하를 높여 부르는 호칭으로 극중에서 연산군이 자신이 아끼는 궁중광대 공길을 부르는 호칭이다. 김태웅 연출은 이번 작품은 연산의 허무와 함께 광대들의 웃음과 유희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는 삶을 좀더 긍정하고 싶어졌다"고 덧붙였다. 오는 27일부터 내달 21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막이 오른다.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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