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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에 헐렁한 T셔츠를 입은 한 요원이 PC모니터 앞에서 마우스를 바삐 움직여가며 암호 같은 코드를 분석해 내고 해커 등과의 한판 전쟁에서 빛나는 재치로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한다. 우리가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접하는 사이버 범죄수사대의 멋진 모습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크게 다르다. 사이버 치안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이에 걸맞은 경찰 인력 확충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선 사이버수사 요원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경찰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유언비어 단속 소식에 국민 여론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자 이로 인한 심적 부담까지 떠안게 돼 사이버수사 부서가 경찰들 사이에서 점점 기피대상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23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온라인공간을 통해 발생한 사기와 명예훼손·해킹 등 사이버범죄는 모두 11만109건으로 집계됐다. 반면 지난해 전국 지방경찰청의 사이버범죄수사대와 경찰서 사이버수사팀에 배치된 사이버수사 요원은 1,105명에 그쳤다. 이를 단순 비교하면 경찰 1명이 연간 100여건을 처리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업무시간, 중장기 수사 등 여러 가중치를 고려하면 현장에서 뛰는 인력의 업무 부담은 이보다 훨씬 크다는 게 일선 경찰들의 설명이다.
아울러 경찰이 최근 메르스와 관련된 유언비어 조사에 나선다는 소식이 알려져 국민 여론이 좋지 않자 수사요원들은 심적 부담까지 더해지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경찰들 사이에서는 사이버수사 부서가 발령 기피대상으로 통한다. 특히 한 경찰들의 온라인 모임에는 '사이버수사팀에 있다 6개월 만에 뛰쳐나왔다' '사건 100건은 기본이다' 등 부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같이 사이버수사 요원들의 인적·심적 부담이 높아지는 것은 결국 시민들의 불편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사기 등으로 피해자가 경찰서에 고소·고발을 하더라도 수사 진행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시민들은 국가 치안 서비스에 대해 불만을 성토하는 악순환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경찰청에서도 이런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경찰청은 사이버수사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 당초 수사국 내에 있던 사이버테러대응센터를 국 단위인 사이버안전국으로 신설하는 등 조직개편을 단행했다"며 "하반기에 일선 요원 240명을 충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사 일선에선 여전히 '가뭄에 소나기 오는 수준'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어서 사이버수사에 대한 경찰 당국의 보다 획기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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