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반 우려 반'
임금ㆍ사회보험ㆍ복리후생 등 근로조건에 차별이 없는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활성화 정책에 대한 반응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지난 10월 시간선택제로 CJ에 입사한 엄지미(41) 사원의 고백은 시간선택제에 쏟아지는 기대를 잘 대변한다. 엄씨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일이 끝나기 때문에 일과 가정을 둘 다 챙길 수 있어 만족스럽다"며 "10년 만에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삶의 열정도 되찾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취업포털 사람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0명 중 7명(68.9%)은 시간선택제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장시간 근로가 당연시되고 시간제는 아르바이트 정도로 인식되는 우리나라의 고용시장 풍토에서 과연 양질의 시간제가 가능하겠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민주노총ㆍ한국노총 등 양대 노동계 단체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용돈 벌이용 알바"라며 쓴소리를 날리고 있고 시간제 일자리 채용 할당량이 정해진 공공부문에서는 "시간제 공무원은 태어나지 말아야 할 혼외 자식"이라는 반응까지 내놓고 있다. 경영계에서도 시간선택제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으로 시간제를 적극 수용할 여력이 부족한 상태여서 인건비 부담만 늘릴 수 있다"며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
◇양이냐 질이냐=시간선택제 일자리 활성화 정책에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는 이유는 시간제 정책이 갖는 본질적인 딜레마에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일자리의 양이냐 질이냐'라는 논란이다. 시간제 일자리의 양을 늘리는 데 집착하면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질을 너무 높이면 기업에서 부담을 가져 양을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일자리의 양과 질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시간선택제 활성화 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정부가 목표로 하고 있는 93만개라는 수치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일자리의 기본적인 질을 보장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당장 내년부터 매년 새로 채용하는 인원의 일정 비율을 시간제로 뽑도록 못 박고 오는 2017년까지 공공 부문에서 총 1만6,500개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이에 대해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은 지난달 열린 한국노동연구원 조찬회 특강에서 "정부가 시간제 채용 숫자를 내세우자 대기업도 부랴부랴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고 있는데 이렇게 급하게 정책을 추진해서는 일자리의 질 저하 등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시간제 일자리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튼튼히 하는 것도 시급하다. 박 교수는 "시간제 근로자에 대한 보호규정은 촘촘하게 설계되지 않은데다 그나마도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하루빨리 시간제법을 정비하고 한시적으로나마 4대 보험 가입 의무를 어긴 사업장에 벌칙을 강화하는 등 법의 집행력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시간제 근로자의 기본적인 근로조건을 보장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일자리의 질을 과도하게 높여 기업의 부담을 늘리는 일은 피해야 한다. 기업들이 특히 부담스러워하는 부분은 시간제를 기간에 정함이 없는 무기계약직으로 뽑고 시간제 근로자의 전일제 전환을 폭넓게 보장하는 일이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아직 기업들이 시간제 근로자의 인력 운용에 대한 경험이 적은데다 근로자들도 여전히 시간제를 '쉽게 그만둘 수 있는 일자리'로 생각하는 상황에서 시간선택제는 기간의 정함이 없어야 한다는 '이상'을 강요하면 인력 운용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당장 무기계약직으로 뽑으라고 압박하기보다는 시간제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점차 넓혀가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는 시간제와 전일제 간의 전환 문제에 대해서는 "전환해달라는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라고 강요하기보다는 회사에서 전일제 일자리를 만들 때 우선적으로 시간제 근로자에게 이를 알릴 의무를 부여하는 등 적절한 절충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여성고용이냐 청년고용이냐=정부는 시간선택제의 주된 타깃이 육아·가사 등의 이유로 전일제 근로가 어려운 여성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경력단절여성이 20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여성고용이 열악한 상황에서 이 같은 목표 설정은 타당하지만 이로 인해 청년고용이 위축될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성고용만큼이나 청년실업도 열악한 상황인 만큼 시간선택제 확대가 청년고용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윤선문 공무원노조 정책실장은 "정부는 공공 부문에서 시간제 채용 비율을 못 박아 시간제를 활성화한다는 계획인데 인건비가 총액으로 묶여 있는 공무원의 경우 시간제 채용이 늘어나면 청년 신규채용이 줄어드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며 "무리하게 시간제 채용 할당량을 강제하는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 교수는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 등 청년고용 활성화 정책에 속도를 올리는 것은 물론 공공기관의 3% 청년고용 의무를 대기업에까지 확대하는 특단의 조치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채용형이냐 전환형이냐=고용부에 따르면 시간선택제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시간제로 새로 뽑는 채용형과 기존 전일제 근로자가 시간제로 바꾸는 전환형이 그것이다. 채용형은 노동시장 밖에 있는 여성·중장년층 근로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유리하고 전환형은 전일제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줄여 장시간근로 관행을 개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고용부는 시간선택제 활성화 정책을 우선은 채용형 위주로 추진하고 점차 전환형도 확대할 계획이지만 이 둘을 구분할 필요 없이 같이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새로 뽑힌 시간제 근로자의 경우 같은 직장 안에 전일제에서 시간제로 바꾼 상사가 있다면 눈치도 덜 보이고 눈에 안 보이는 차별도 줄어들지 않겠느냐"며 "전일제 근로자들이 시간제로 전환하면 근로조건이 수평이동하기 때문에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드는 데도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장 민간에서 시간제 전환을 확대하는 것은 기업의 부담이 큰 만큼 공공 부문에서부터 근로시간을 줄이기 원하는 전일제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전환형 시간제를 적극 '실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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