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고도성장의 신화를 쓰며 지난 반세기 동안 권력을 잡아온 싱가포르 국민행동당(PAP)이 건국 50주년을 맞아 100년 장기집권을 노린 승부수를 던졌다. 리센룽(63) 싱가포르 총리가 앞으로 50년간의 국운을 명분으로 내걸고 국회의원 조기 총선거를 단행하겠다고 포문을 열었다.
2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리 총리는 지난주 말 건국 기념행사 연설에서 "우리는 앞으로 50년간의 국가 위상을 향한 여정에 나서고 있다"며 "이 같은 국가 건설의 다음 단계로 싱가포르를 이끌기 위한 여러분(국민)의 명령을 듣기 위해 (조기 국회의원) 선거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리 총리의 연설로 그동안 시중에 떠돌던 조기총선 단행설이 사실로 확인됐다. 원래대로라면 차기 총선은 오는 2017년 1월까지 치러져야 하지만 현재 분위기로 볼 때 올해 9월 중순 실시가 유력하다고 WSJ는 전했다.
조기총선에서 승리하는 정당은 이후 5년간 집권하게 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게 리 총리의 설명이다. 그는 이번 조기총선의 의미에 대해 "앞으로 15~20년간 여러분과 일할 (정부) 팀을 고르게 될 것"이라며 "향후 50년간 싱가포르의 향방을 결정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선거를 앞당겨 최장 반세기 더 장기 집권하겠다는 현 집권당의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낸 셈이다.
PAP는 지난 2011년에도 조기총선을 단행해 집권연장에 성공한 바 있다. 그런 리 총리가 같은 승부수를 다시 던진 데는 예전 같지 않은 민심을 되돌리려는 전략이 녹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 경제가 고도성장의 궤도를 벗어나 성장둔화의 늪에 빠진데다 1,000만 인구 시대의 도시 과밀화, 외국인 근로자 유입 급증 등으로 인한 사회 및 복지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여당에 대한 국민들의 표심이 점차 식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지난번 조기총선 때만 해도 PAP는 전체 87석인 의회 의석 중 81석을 석권했지만 정당투표에서는 2006년 총선 당시보다 6.9%포인트 떨어진 60.1%에 그쳐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수출에 의존하는 싱가포르 경제는 중국 경제성장 둔화와 미국의 고르지 못한 경기회복, 유럽의 수요감소로 타격을 입었다고 블룸버그는 진단했다.
리 전 총리는 이처럼 가라앉는 국운에 대한 국민적 위기감을 역이용해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정치적 안정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재집권의 명분을 얻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그는 주말 연설에서 좋은 통치가 유지되지 않고 경제약화를 겪게 된다면 싱가포르가 '그저 그런 나라(ordinary country)'로 전락할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리 총리의 재집권이 유력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정국을 뒤집을 만한 신진 경쟁자 등장, 야당의 약진 등 변수는 남아 있다.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행정대학원의 카쇼어 마부바니 원장은 24일 블룸버그TV에 출연해 "싱가포르에는 과거에 없었던 정치적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있다"며 "잠룡(potential leader)들이 좀 더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CNBC도 싱가포르 현지 여론전문가의 견해를 소개하면서 노동자당이 현재 23석인 의석을 28석으로 불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소개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