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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근로시간이 가장 길다. 장시간 노동에 따른 문제와 개선 필요성에 대해 사회 구성원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야는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켜 주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계를 중심으로 인건비 상승에 따른 기업 경영 부담과 근로자 임금 감소 등을 우려해 점진적 시행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근로시간 단축 법제화를 통해 하루빨리 근로자들이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양 측의 견해를 싣는다.
● 찬성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저생산성·저임금 악순환 고리 끊어
일·삶의 균형 사회 기틀 마련해야
근로기준법은 법정근로시간 주당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을 포함해 최대 5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연장근로시간 산정에서 제외된 만성적인 휴일근로가 일과 삶의 균형을 깨뜨리는 장시간 근로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려는 최근의 논의는 이러한 부정적 근로문화의 개혁이라는 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하며 기본원칙이 지켜지도록 잘못된 제도나 관행을 즉각 정비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노동정책의 비전을 담은 '고용률 70% 로드맵'은 일하는 방식과 근로시간 개혁을 4대 전략 중 하나로 삼고 있으며 이를 위해 장시간 근로 개선,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 및 확산, 유연근무제의 확산을 추진하고 있다. 장시간 근로를 개선하기 위해 과도한 연장ㆍ휴일근로의 단계적 축소 등으로 2,116시간인 연간근로시간을 1,900시간 이하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러한 목표가 달성되면 모든 근로자가 휴가도 없이 쉬지 않고 일년 내내 매주 40.1시간 일하는 일중독 사회에서 4~5주의 휴가(연차휴가와 공휴일)를 모두 쓰며 매주 40시간 일하는 '일-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사회로 옮겨가는 기틀이 마련된다. 이를 위한 구체적 방안 중 하나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시켜 '주당 근로시간 최대 52시간'을 기본원칙으로 삼는 것이다. 다만, 산업현장의 부담을 최소화하고자 단계적 적용과 예외적 연장근로의 인정 등을 고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예외의 인정이 일시적이도록 일몰제를 적용해 기본원칙을 유린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근로자의 13%가 52시간을 넘는 장시간 근로를, 5%가 60시간을 넘는 초장시간 근로를 하고 있다. 휴일근로를 하는 장시간 근로 중 72%는 제조업에, 휴일근로 없는 장시간 근로 중 69%는 서비스업에 종사해 상당히 대조적이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켜 이를 주당 12시간으로 제한하면 주요 제조업 종사자를 포함해 62만명의 총 근로시간을 61시간에서 52시간으로 15% 줄이는 혁신을 이루게 된다.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은 사업체 규모와 무관하게 유사한 효과를 유발하는데 대응방식에 따라 구체적 효과는 상당히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자동차의 사례에서 보듯 임금재원과 자금여력이 충분한 대기업에서는 설비투자 등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지나친 임금삭감 없이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금도 충분하지 못하고 구인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서는 기존 근로자의 임금삭감과 신규근로자 채용의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중소기업의 비용 상승, 납품단가 인상으로 이어지는데 이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안은 원하청 사업체 간 합리적 수준의 공정거래와 하청업체의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는 원청업체의 적극적 기술지원이다. 이를 계기로 단가 후려치기 등 원시적 관행을 타파해 원하청 구조로 이뤄진 제조업 생태계의 건전성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0년간 주5일제가 단계적으로 시행되고 시간제근로 비중이 늘어나 2002년 주당 50시간에 이르던 평균 근로시간이 2012년에는 44.5시간으로 5시간 넘게 줄어들었다. 향후에도 근로시간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를 유지하겠지만 앞으로 지나친 장시간 근로를 조장하는 폐습은 과감하게 그 뿌리를 뽑아 장시간 근로, 저생산성, 저임금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는 근로문화를 만들어야 할 때다.
● 반대 김동원 고려대 노동대학원장
임금 보전 둘러싼 노사갈등 불보듯
생산성 향상 사회적 합의 도출부터
우리나라의 장시간 노동은 근로자의 스트레스 증가나 과로에 따른 건강 문제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지만 충분한 준비 없이 근로시간 단축부터 할 경우 다수의 사업장에서 임금 보전 문제를 놓고 심각한 노사갈등이 예상된다. 근로시간 단축은 노사 간 생산성 협상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와 함께 진행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가 중 멕시코와 함께 가장 근로시간이 긴 나라다. 2012년 기준 한국의 근로시간은 2,092시간에 달하는 반면 OECD국가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1,776시간에 불과하고 네덜란드ㆍ노르웨이ㆍ독일 등은 1,500시간 미만을 근무하고 있다. 장시간 근로의 폐해는 예로부터 널리 알려져 있다. 스트레스 증가, 건강 문제, 일과 삶의 조화에 역행하는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으며 심지어 회사에 갓 입사한 젊은 청년들이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는 장시간 근로로 인해 마땅한 데이트상대를 구하지 못해 결혼과 출산율 저하를 초래한다는 의견도 있을 정도다. 특히 장시간 근로가 상사의 눈치를 보며 퇴근하지 못하는 등 시간만 때우는 식으로 진행된다면 오히려 시간당 노동생산성을 낮춰 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나라의 장시간 근로관행의 원인 중 하나는 휴일근로시간이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은 1주일 40시간에 연장근로는 주당 최대 12시간까지 허용돼 1주일 법정 최대근로시간은 52시간이다. 하지만 그동안은 정부의 행정해석으로 주말근로를 연장근로로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주말 16시간을 포함해 최대 68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대부분의 OECD회원국들이 휴일근로시간을 법정근로시간에 포함해 계산하는 관행에 반하는 것이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주당 최장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즉시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모든 기업이 즉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해 1주간 노동자의 초과근로 가능시간을 12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이 노와 사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안이 되기 위해서는 노와 사의 생산성 협상(Productivity bargaining)이 미리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전에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정이 근로시간 단축의 원칙에는 합의했지만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던 것은 근로시간 단축시 임금보전에 대한 이견 때문이었다.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단축되는 만큼 인건비도 줄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노동계는 근로시간이 준다고 인건비를 줄이면 생계유지가 힘들므로 임금을 어느 정도 보전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근로시간단축과 소득 보전을 함께 달성하는 방안은 결국 노사 간의 생산성 향상밖에 없다. 즉 근로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종전의 임금을 지급하려면 노사가 협력해서 제품과 서비스의 단위시간당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
만약 일각의 주장대로 다른 준비 없이 근로시간 단축만 먼저 이뤄진다면 다수의 사업장에서 심각한 노사갈등이 예상된다. 갈등 없이 작업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수용되려면 노사 간 생산성 협상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와 근로시간 단축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 또 근로시간을 단축하면서도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기업 규모별 지급능력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대기업이 먼저 시행하고 중소기업은 순차적으로 도입하는 등 기업 규모별로 시행시기를 다르게 정하는 단계적인 조치도 고려해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의 대원칙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과제이지만 노사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노사정이 사전에 철저히 준비를 하고 결행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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