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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국민이 나서면 우리쌀 살릴수 있다
입력2004-12-19 16:45:05
수정
2004.12.19 16:45:05
허용준 농협조사연구소 조사역
“생쌀 먹으면 네 어미 죽는다.”
시골에서 부모님이 부쳐주시는 쌀자루를 볼 때마다 어릴 때 듣던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나고는 한다. 방안 한켠을 차지한 쌀자루 속에서 도둑질하듯 생쌀을 한웅큼 꺼내 입에 넣고 씹다가 할머니한테 들켜 야단맞고는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쌀이 얼마나 귀했기에 오죽하면 아껴먹어야 한다는 말씀을 어머니의 목숨에 빗대어 하셨을까.
이처럼 융숭한 대접을 받던 우리의 쌀이 지금 큰 위기에 처해 있다.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 쌀 협상이 어떻게 결말이 나든 쌀 수입은 지금보다 더욱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쌀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닌 민족문화의 뿌리로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그 무엇을 갖고 있다. 쌀 농사는 ‘두레’라는 공동체문화를 만들어냈고 모내기 소리, 논매기 소리, 타작 소리 같은 춤을 곁들인 우리 고유의 가락을 창조해냈다. 우리 선조들은 가을 수확을 하면 햅쌀을 조상에게 먼저 천신(薦新)했고 그 해의 농사에서 가장 잘 익은 벼의 목을 골라 뽑아다가 기둥이나 방문ㆍ벽에 거는 의식을 통해 다음해의 풍년을 기원했다.
최근 쌀을 통해 일본문화의 정체성을 조명해 화제가 되고 있는 미국 위스콘신대학의 오누키 에미코 교수도 “쌀을 주식으로 삼고 있는 민족에게 있어 쌀은 곧 그 민족 자체를 의미하며 그 민족의 혼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쌀은 우리의 일상생활ㆍ놀이문화ㆍ신앙ㆍ식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우리 민족의 근간인 것이다.
쌀은 또 식량안보의 중심에 있다.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인 27% 수준인데 그나마 이를 유지하는 데는 쌀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쌀을 제외하면 우리의 곡물 자급률은 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쌀이 우리의 식량안보를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127%, 독일 132%, 프랑스 176% 등 선진국일수록 100%가 넘는 곡물 자급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쌀 문제는 농업인만이 아닌 국민 모두의 문제이다. 쌀산업이 무너지면 농촌경제의 피폐는 물론 국가균형발전에 큰 저해가 초래되며 결국에는 민족문화의 뿌리를 잃게 된다.
이제는 국민 모두의 힘이 필요하다. 국민 모두가 우리 쌀 소비에 적극 앞장서준다면 우리 쌀은 아무리 높은 수입개방 파고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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