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일차적 책임은 정부 여당에 있다. 핵 관련 범죄 대상 확대와 국제공조 강화를 담은 원자력방호방재법은 여야 간 쟁점 법안이 아니다. 정부 입법으로 발의된 지 1년7개월이 지났고 그 사이 임시국회만 12번이나 열릴 만큼 처리시한도 충분했다. 관심만 있었다면 국무총리가 국회에 법안처리를 긴급 요청하는 일도, 국회의장이 결례를 무릅쓰고 아세안 4개국 순방을 취소하는 법석도 떨지 않을 사안이었건만 정상회담이 코앞에 닥치고서야 몸이 달았다. "새누리당이 자신과 정부의 잘못을 떠넘기려 한다"는 민주당의 비판이 틀린 게 아니다.
그러나 법안 처리를 위한 국회소집 요구에 대한 민주당의 반대에는 동의할 수 없다. 방송법과의 연계를 주장하지만 두 법안을 엮을 수 있는 고리는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가 같다는 것 외에는 없다. 핵테러방지협약을 여야 합의로 비준해놓고 이제 와서 시행법안을 막는다는 것 역시 이치에 맞지 않는다. 상대의 다급한 처지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겠다는 구태일 따름이다.
핵안보 정상회의까지 이제 겨우 일주일 남았다. 싸울 겨를이 없다. 나라 망신을 피하려면 비준안 처리를 위한 원포인트 국회라도 열어야 한다. 정부 여당은 진정성을 담아 야당을 설득하고 야당은 협조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이미지 제고의 기회이기도 하다. 정치권에서 그토록 외치는 새 정치와 신뢰정치의 출발은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