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닌 이들에게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과 '뉴스위크'는 애증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광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벌어진 군부 정권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확실히 실망스러웠고, 그에 따라 대학가를 중심으로 현대사를 재인식하자는 분위기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반미 감정이 크게 일어났다. 타임이나 뉴스위크를 끼고 다니면서 영어로 된 뉴스를 읽는 것은 시대의 첨단을 달리는 '댄디'의 상징에서 곧바로 다가올 혁명에 동참하지 않는 민족 반역자의 표적이 되었다. 마치 몇 달 전, 진보정당에서 갑자기 논란이 된 아메리카노 커피처럼.
그러나 1990년대 학번에게 CNN이, 2000년대 학번에게 '미드'가 그러하듯이 타임이나 뉴스위크 같은 미국의 시사주간지들은 다만 영어 좀 배워서 기성권력에 들붙으려는 친미 출세주의자의 증거만은 아니었다. 동시에 그들은 좁다란 한반도 바깥의 더 넓은 세상으로 열린 통로였고, 당시 국내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들었던 온갖 풍물과 소식의 향연이었다. 그곳에서는 정은 넘치나 맛은 텁텁한 다방 커피가 아니라 원두의 맛과 향을 제대로 살린 드립 커피의 느낌이 났던 것이다.
지난주 금요일 뉴스위크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종이 잡지 발행을 중단하고 '글로벌 뉴스위크'로 이름을 바꿔 디지털 잡지로만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단지 뉴스위크가 아니라 '그' 뉴스위크를 떠올린 것이 오직 나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복잡한 수입 절차 때문에 발행일로부터 한참 지나서 도서관에 들어오기 일쑤였지만 매주 그 잡지의 표지에 무엇이 실렸는지 궁금해 하고 크고 작은 기사의 행간을 살피면서 세계 문화계의 풍향을 짐작해 보았던 시사주간지. 그 세계의 창이 인터넷 시대 이후 오랜 시련 끝에 드디어 닫히고 어둠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구텐베르크 혁명 이후 지난 500년 동안, 지식과 정보를 가장 빠르고 값싸게 전달하던 페이퍼 미디어의 시대는 이제 거의 종언을 고하고 스크린 미디어의 시대가 갈수록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물론 이런 추세가 곧바로 페이퍼 미디어의 종말이나 종이의 소멸을 뜻할 리는 없다. 텔레비전의 등장 이후 라디오 미디어가 주요 레퍼토리였던 드라마 대신 대화와 수다를 무기로 되살아났듯이, 페이퍼 미디어 역시 소비자들에게 접속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과 정보의 빠른 전달이 아니라 오직 소유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아마도 끝내 생존할 것이다. 1933년 창간 이래 전 세계 주간지의 맏형 역할을 해 오던 뉴스위크의 디지털 행보가 진정으로 유감인 것은 추억 때문만이 아니라 이러한 시대적 소명이 그들 앞에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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