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게 고달프고 힘들죠. 괴로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은 희망밖에 없어요. 스스로가 희망을 만들어내야 해요. 절망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이 희망이에요. 새해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지난날 괴롭고 힘들고 실패했던 것을 잊어버리고 새 마음으로 새 희망을 가꾸는 자기능력을 가지면 위안받을 일도 생깁니다." 밀리언셀러 소설 '정글만리'를 낸 조정래(70·사진) 작가가 저무는 2013년 팍팍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실업에, 고용불안에, 사업 실패로 고통받는 이들이라면 내부에서 희망을 찾아야한다고. 그는 또 "절망감만큼 우리 현실이 나쁘지 않다"며 "사람들이 욕심 때문에 현실을 자꾸만 나쁘게 본다"고도 지적했다. "지난 1960년대 독일로 광부·간호사들이 돈 벌러 갔을 때 광부 중 90%가 대학생이었을 정도로 일자리가 없었다"며.
24일 르네상스서울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 7월 그는 20여년 전부터 구상해 6년여간 중국을 십여 차례 드나들며 써낸 장편 '정글만리'를 펴냈다. 중국을 무대로 한국·중국·일본 기업 간 비즈니스 경쟁을 뼈대로 하지만 정치·사회·외교적 측면까지 폭넓게 다루며 현지 상황을 생생하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가는 "'정글만리'를 통해 문화와 풍습 모든 측면에서 중국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될 때 그들과 함께 살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라며 "책 결말 부분에서 한국인 남자와 중국인 여자 주인공이 결혼하는 것도 두 나라가 그렇게 화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 기업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지역사회에 이익을 환원하는 모델을 가져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 속 액세서리 칭다오 공장 사장인 하경만은 실존 인물로 현지에서 환경미화, 장학금 수여 등으로 신망을 얻어 표창까지 받았어요. 미국 기업인들이 존경받는 것은 100여년 전 록펠러·카네기가 이뤄놓은 전통을 이어 버핏이나 게이츠가 상상하기 힘든 금액을 사회에 환원하기 때문이죠. 이런 분위기가 우리나라에도 적용되면 청년실업과 복지, 대학등록금 문제 등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국내에는 유일한 박사와 박태준 회장 정도인데 앞으로 이런 분들이 20명, 200명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조 작가는 한국이 중국과 미국 사이의 외교에 신경 써야 하고, 특히 중국과 가장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나아가 일본보다는 급격히 부상하는 인도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다.
"강대국 틈새에 끼인 지정학적 문제는 한반도의 태생적 운명입니다. 과거 냉전시절에는 미국 그늘에 숨을 수 있었다지만 이제는 그것도 여의치 않아요. 한국이 돈은 중국에서 벌고 정치적으로는 미국 편에 선다는 시각을 중국이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갈 길은 중립화 통일입니다. '어느 편도 들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중국과 미국 양쪽에 보내야 합니다. 북한에도 하나의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를 위해서는 과거 오스트리아가 그랬듯이 정당부터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는 특히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우려에 대해 "중국이 역사왜곡, 소위 '동북공정'으로 정치적 야망을 드러내고 있지만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며 "미국·영국 언론에서도 지적했고 유럽서도 다 웃는 얘기다. 그보다 큰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작가는 최근 북한의 내부 동요에 대해 한국 정부의 인사가 잦은 논평을 내는 것에 대해 경박한 대응이라고 비판했다. "중국은 북한에 개방정책, 한국에 대북지원을 권하며 그 사이에서 외교적으로 민망한 관계를 만들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오는 2015년에 통일이 된다는 식의 얘기를 함부로 하죠. 그런 얘기들이 위기를 조장하고 전쟁을 만듭니다. '잘 정리되기 바란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내든가 아예 얘기를 안 하는 것이 맞습니다."
출간과 동시에 꾸준히 베스트셀러 선두를 지켜온 '정글만리'는 이달 초 누적판매 100만부를 넘어섰다. 소설로는 2008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단행본)', 그리고 2010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전 3권)'에 이어 3년 만의 밀리언셀러다. 또 작가 개인으로는 대표작인 '태백산맥(전 10권)' 800만부, '아리랑(전 12권)' 380만부, '한강(전 10권)' 250만부에 이어 네번째다. '정글만리'를 포함하면 조정래 대표작의 통산 판매부수는 1,530만부를 넘어섰다.
그간 서점가는 '힐링' 에세이가 싹쓸이해왔다. 올 하반기 소설 판매가 늘며 일부에서는 '소설의 부활'을 얘기하지만 아직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국내 작가 지망생이 5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신춘문예 경쟁률이 1,000대1을 넘어서고 있지만 극히 소수의 작가를 제외하고는 전업작가 생활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작가들 스스로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라디오·영화·정보기술(IT) 기기들, 특히 스마트폰까지 기술이 발달하며 '소설의 적'이 늘고 있어요. 그렇게 사람들이 책을 점점 더 멀리하지만 사실 (작가가) 독자를 잃어버린 측면이 더 큽니다. 축구선수가 똥볼을 차고, 야구선수가 땅볼만 치면 관중이 줄기 마련입니다. 선진국 대비 독자가 적지도 않습니다."
특히 젊은 작가들에게는 사회의 문제와 갈등에 대해 고민하는 역사의식을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공동체의 삶 속에서 모순·문제·갈등 같은 것을 해결하는 역사 사유의식을 갖추지 않으면 죄다 (작가의) 사적인 얘기만 쓰게 됩니다. 갈등의 해결, 위안, 재미 같은 것을 모두 외면하고 (작가들이) 자폐증에 걸려 '예술을 위한 예술', 아무도 읽지 않는 문학을 하면 결국 자기 손해죠." 이어 그는 자신의 롤모델이 빅토르 위고였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미 150년 전에 나온 '레미제라블'을 보세요. 우리와 상관없는 시대와 장소의 얘기지만 영화·뮤지컬 모두 인기가 높습니다. (위고가) 사회성·예술성을 잘 승화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런 정신을 확보하지 못하면 우리 문학·작가에게 비전이 없습니다. 1980년대가 그 시대와 다를 게 뭐 있겠습니까. 제 소설 '아리랑'을 지금 광복 70주년 기념 뮤지컬로 만들고 있는데 일제치하에서 36년간 핍박 받은 이야기를 펼쳐놓으면 '레미제라블'만큼 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나아가 한류열풍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현재 우리 인구가 5,000만명 남짓인데 올해 2억명이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과거 백범 김구 선생이 부강한 나라보다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를 원한다고 했는데 우리 한류 드라마가 중국을 휩쓸고 남미·아프리카에도 퍼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문화의 힘이 강한 민족이기에 정부 지원 없이도 이만한 영향력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굉장히 희망적이죠."
사진=김동호기자
△1943년 전남 승주 △1962년 서울 보성고 △1966년 동국대 국문학과 △1970년 월간 '현대문학' 6월호에 '누명'이 추천돼 등단 △1976~1977년 월간 '소설문예' 인수·경영 △1978~1980년 도서출판 민예사 설립·경영 △1981년 현대문학상 수상(유형의 땅) △1982년 대한민국문학상 수상(인간의 문) △1983~1986년 현대문학에 '태백산맥' 연재 △1988년 성옥문학상 수상(태백산맥) △1989년 동국문학상 수상(태백산맥) △1990~1995년 한국일보에 '아리랑' 연재 △1998~2002년 한겨레신문에 '한강' 연재 △2003년 만해대상 수상(한강) △2006년 현대불교문학상 수상(미로 더듬기) △2008년 자랑스러운 동국인상 수상 △2013년 '정글만리' 출간
앞으로 10여년 쓸 작품 구상 … 차기작은 교육문제 다룬 장편
■ 칠순에도 넘치는 집필 열정
조정래 작가는 70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10여년 정도 쓸 작품목록을 모두 계획해뒀다. 인간 존재의 문제를 다룬 장편 두 가지와 내후년께 선보일 교육 관련 장편 하나, 그리고 산문집과 단편집이다. 그는 우리 교육 문제를 다룬 장편 '나는 나야(가제)'를 오는 2015년 여름께 선보일 예정이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취재해 연말께 집필에 들어갈 계획이다.
그는 우리 교육현실을 강하게 비판하며 현상황을 '야만국가'라고 규정했다. 어떻게 정규교육 과정에서 국사 시간을 줄여가며 영어교육 시간을 늘릴 수 있느냐는 얘기다. "학생들이 삼일절을 '삼점일절'이라고 읽는 지경입니다. 물론 경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공부기계로 만들고 개성을 말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경쟁을 통해 더 잘사는 나라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지 인간성을 말살하면서까지 돈을 많이 모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어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중 자살·이혼율이 1위인 반면 행복지수는 꼴찌예요. 사람 살 곳이 아닌 '인간지옥'이라는 얘깁니다. 자살률의 절반은 청소년, 특히 성적비관이 대부분이죠. 그 아이들을 죽게 한 건 무조건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탐욕입니다."
책은 고등학생 주인공의 자살 장면으로 끝날 것 같다고 작가는 인터뷰 말미에 귀띔했다. "부모의 압박 속에서 자신을 인정받지 못한 고등학생 주인공이 자살하게 되죠. '살고 싶어, 나는 살고 싶어' 하면서 15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겁니다. 10대들이 성적 때문에 죽어간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닙니까."
또 내년 4월 중국에서 선보일 '정글만리'에 대해서는 '기대 반 호기심 반'이라고 털어놓았다.
사실 정부가 언론과 출판을 모두 통제하는 중국에서는 위화나 모옌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도 민감한 현실 문제를 다룬 글을 출판하지 못한다. 하지만 '정글만리'는 현재 중국의 정치·경제·사회적 문제와 갈등에 대해 가감 없이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에서 이 책을 좋아할 리 없어 사전검열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다소 내용을 고치게 될 겁니다. 어느 정도는 동의할 생각이죠. 중국인들도 제3국 작가의 시선이 궁금할 것이고 중국의 장점에 대해서도 많은 내용이 들어갔습니다. 보통 현지에서 인기 소설은 열흘이면 복사본이 나오는데 어찌될지가 더 궁금합니다(웃음)."
/대담=오현환문화레저부장 hhoh@sed.co.kr
/이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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