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를 중심으로 한 서울 지역의 지정학적 가치는 고려시대부터 분명해졌다.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한반도 남부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울 지역을 거쳐야 했다. 자연히 서울의 지리와 성장 가능성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넓은 평야와 함께 한강이 흐르는 수륙교통의 요지라는 입지는 국가발전과 함께 더 강화됐다. 정치적 측면에서도 중요했다. 고려는 실질적인 통일왕조라는 자의식으로, 고구려ㆍ신라ㆍ백제의 옛 도읍에 각각 수도급 행정구역을 설치했다. 즉 평양에 서경을, 경주에 동경을, 그리고 한성백제의 도읍이었던 서울에 남경을 두었다. 이는 개경과 함께 4경 체제를 구성한다. 이에 따라 서울로의 교통로 정비는 국가적 사업이었다. 개경에서 임진강을 건너 파주와 고양을 거친 후 지금의 안산ㆍ인왕산 사이인 무악재를 넘는 길이 서울로 들어오는 핵심 루트였다. 1045년 혜소국사(慧炤國師) 정현(鼎賢)이 지금의 서대문구 홍제동 지역, 북쪽에서 무악재로 들어오는 초입에 사원을 세웠고 '홍제원(弘濟院)'으로 이름 붙였다. 이는 여행객들의 숙소로 조선시대까지도 사용됐다. 지금은 사진처럼 건물은 사라지고 표지석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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