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간의 과거사 갈등을 어떤 식으로든 봉합해 역내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 체제를 구축하려던 워싱턴으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듯한 분위기가 읽힌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국무부 등 관련 당국은 크리스마스 휴일이어서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은 조만간 주일 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번 사안에 대한 첫 공식 견해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아베 총리의 행보에 대한 유감 표명과 함께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표현이 담길 가능성이 커 보인다.
또 미국 국무부는 미국 동부시간으로 26일 낮 정례브리핑을 통해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분명히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 내부의 기류를 잘 아는 소식통들은 “그동안 미국은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자제한 것을 높이 평가하면서 과거사와 관련해 나름대로 성의를 표시하는 것으로 이해해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취임 1년을 맞아 전격적으로 신사참배를 강행한 것에 대해 놀라고 크게 실망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외교소식통은 “아베 정권에 대한 미국 내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아베 총리가 지난 1차 내각(2006년 9월∼2007년 9월)때, 그리고 2차 내각 출범 이후 1년 동안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음으로써 미국 내에서 “그 정도면 과거사 대처에 상당히 노력했다고 할 수 있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이번 일로 아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조 바이든 부통령은 이달 초 일본 방문 때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이 나서줄 것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져 오바마 행정부 내부의 당혹감이 더 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에 부정적 영향이 끼쳐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다만 아베 총리가 2기 내각 출범 이후 미국과 안보 면에서는 물론이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경제면에서의 관계를 강화해왔다는 점에서 미국 정부의 반응이 상당히 정제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서 나름의 성의 있는 행보를 하고 있다고 판단하면서 중국의 부상과 북한 상황의 긴박한 전개 등으로 한국과 일본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이른바 ‘과거사-안보협력’ 분리를 선호하는 미국 정부의 방침도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와 이에 대한 한국과 중국 등의 반발 등이 거세질 경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에토 세이이치(衛藤晟一) 총리 보좌관이 지난달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미국 조야의 인식을 파악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해 미국 정부 내 일본 담당자들과 면담한 결과 미국 측 반응은 매우 싸늘했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전하기도 했다.
주미 한국대사관은 국무부 핵심당국자들과 연락을 취해 이번 사태와 관련한 미국 정부의 기류 등을 파악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디지털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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