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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회관이 겉돈다] <상> 공연 없는 공연장

기획공연 '가뭄의 콩'… 운영비도 못 벌어 예산 먹는 애물단지로

문화융성 밑그림 없이 건물 올리기에만 급급

공연으로 버는 돈보다 인건·유지비가 더 나가

2000년 이후 대규모 예산을 투자한 지역 문예회관들이 잇따라 문을 열었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소수 회관을 제외 하고는 '지역민의 문화 함양'이라는 설립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이렇다 할 공연과 수익 없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은 제6회 전국 지방선거가 열리는 동시에 지방자치제도 실시 20년이 되는 해다. 국가균형발전과 분권을 목표로 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지역발전을 위한 지역 간 경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여기에 2000년대 들어 민선 단체장들이 늘어나 지역민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공약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대표적인 공약의 산물이 지역별로 들어선 문화예술회관이다. 지역민의 문화생활을 활성화해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목표하에 2000년 이후 들어선 전국의 문예회관만 2012년 기준 112곳. 국내 문예회관(214곳)의 절반 이상이 최근 10년 전후로 설립됐다. 문제는 우후죽순 들어선 문예회관 상당수가 '지역민의 문화 함양'이라는 설립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이렇다 할 공연과 수익 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서울경제신문은 전국 문예회관의 공연 실태를 점검하고 바람직한 운영 방안을 모색한다.

"볼 만한 공연이 없다 보니 찾는 사람도 별로 없어요." A씨는 몇 해 전 수도권의 한 문예회관 안에 상점을 냈다가 임대계약이 끝나자마자 철수했다. 퇴직 후 용돈벌이 삼아 문예회관에 입점했는데 생각과 달리 장사가 잘되지 않았다. "공연이라 할 만한 것도 없는데다 가끔 열리는 행사도 2~3일이면 끝나 장사에 별 도움이 안 됐어요. 주말 특수가 큰 것도 아니고. 한동안 앉아서 퇴직금만 까먹다가 결국 장사를 접었어요."

서울경제신문의 분석 결과 전국 문예회관의 50%(106곳)가 1년 중 공연일수 50일이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연일수 100일 미만인 곳은 70%(148곳)에 달했다. 가장 많은 공연일수를 기록한 곳은 1년 동안 무려 754일(복수 공연장 보유 문예회관의 경우 공연장별 일수 합산) 동안 공연을 열었지만 10일 미만에 그친 곳도 22곳이나 됐고 이 중 10곳은 1년 중 한개의 공연도 무대에 올리지 못했다.

◇문화 융성이 아니라 선거 공약(空約)의 산물=태생적인 배경 자체가 문예회관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애초 문예회관 건립이 문화 융성보다는 지역 간 경쟁, 표심에 초점이 맞춰져 추진됐다는 것이다. 이승엽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과 교수는 "국내 문예회관들은 대부분 지방자치제도 시행 이후 '지역 간 경쟁' 등 예술 외적인 동기가 더 크게 작용해 들어섰다"며 "예술이 아닌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접근하다 보니 문예회관의 자체 창작 역량 개발은 요원한 상태"고 지적했다. 자발적으로 공연을 기획해나갈 능력 없이 대관 업무에 치우쳐 수익을 꾀하는 안일함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한 지역 문예회관 관계자도 "2000년대 들어 선거를 의식한 민선 단체장들이 수익성을 검토하지 않고 무작정 문예회관 건물만 올리는 데 급급했다"며 "공연을 올려 얻는 수익보다 인건비나 유지비 등 시설 운영비가 더 나가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무료 전시회나 문화강좌, 대관업무 등 현재의 수익구조 만으로는 1년 운영비가 기본 몇십억원인 문예회관이 지자체의 예산만 깎아먹는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운영비도 문제인데다 공연 프로그램 가동률도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문예회관의 공연프로그램 가동률은 34.8%로 예술의전당·국립극장 등 중앙정부 산하기관(96.8%), 대학로(93.1%), 대학로 외 민간(69.4%)에 크게 뒤떨어졌다. 공연 프로그램 가동률은 공연일수와 공연 준비일수를 365일 중 휴관일과 설비일수를 제외한 일수로 나눈 비율이다.

◇기획공연은 '가뭄의 콩'=자체 기획공연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2012년 1년간 전국 213개 문예회관의 평균 기획공연일수는 30일에 그쳤다. 서울의 평균 기획공연일수가 114일로 가장 많았고 부산(61일), 대구(58일), 대전(58일), 울산(46일), 인천(40일), 경기(38일)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기획공연 실적은 미미했다. 개별 문예회관별로 기획공연일수가 100일이 넘는 곳은 15곳에 불과했고 이 중 5곳이 서울 소재였다. 대도시를 제외한 상당수 문예회관이 자체적으로 공연을 기획하는 능력 없이 장소만 빌려주는 '대관기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인기 공연들이 찾지 않는 지역 문예회관들은 대관도, 기획도 모두 놓친 채 운영비도 버거운 상황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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