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적 교육복지사업인 무상급식과 누리과정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예산논쟁은 국내 교육복지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교육감을 막론하고 예산편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무분별하게 공약을 쏟아내면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정책적 진단보다는 정치논리가 앞서면서 진보진영이 내놓은 무상급식과 대통령 공약인 누리과정 확대가 대립각을 세우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제기된 교육복지 공약 때문에 교육청의 재정은 기형적으로 변한 지 오래다.
국회교육혁신포럼과 시도교육감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이후 일반회계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재원이 변경된 사업만도 15개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17개 시도교육청 예산에서 고정적 지출인 경직성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80.4%에 달한다. 이 가운데 약 58.2%가 교원 인건비다. 여기에 누리과정과 무상급식·돌봄교실 등의 국정과제까지 더해지면서 교육예산은 갈수록 빠듯해지고 있다. 더군다나 최근 경기침체로 세수까지 줄어들면서 일선 교육현장에서 꼭 필요한 사업도 곳곳에서 차질을 빚고 있다. 이로 인해 올 한해 학교 신·증설액 1조4,862억원과 교원 명예퇴직수당 7,474억원, 시설개선투자 1조5,587억원 등 총 3조7,923억원 규모의 사업이 비용 부족으로 시행되지 못했다. .
이 같은 예산난맥을 이해당사자 간 정책적 해결보다 정치적 논리에 의존하게 된 점도 상황을 더욱 꼬이게 하는 배경이다. 지난달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세수감소, 세수결손 정산분 등으로 인해 교부금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중앙정부가 누리과정 예산 증가분 등의 국고 편성을 배제하자 내년 누리과정 예산(3조9,284억원) 중 어린이집 보육료에 해당하는 2조1,429억원을 예산에 편성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교육감들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법률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도록 돼 있어 이를 교육청에 떠넘기는 것은 법률 위반이라는 주장도 내놓았다. 하지만 누리과정 예산의 재원 변화는 2011년 누리과정을 모든 소득계층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할 때부터 정해진 바다. 보건복지부 소관인 어린이집을 교육부로 이관, 운영·지도·감독에 나서기 위해 오는 2015년부터 전체 예산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감당하도록 약속된 것이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도 누리과정 예산 문제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보건복지부 소관인 어린이집을 교육부로 이관하려면 먼저 예산부담부터 나서는 게 타당할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무상급식 전면 거부를 선언한 경남도도 비슷한 반응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5일 무상급식 지원 중단 방침을 설명하면서 "국고가 거덜 나고 있는데 무상파티만 하고 있을 것인가"라며 "무상급식사업은 본래 교육청 사업으로 지자체에서 지원할 의무가 없다. 무상급식 예산을 지자체에 달라고 하니 재정이 어려운 지자체들이 힘든 지경"이라고 답했다. 올해 무상급식 소요액은 2조6,568억원으로 누리과정 예산(3조4,156억원)에 비해 7,000억원 가까이 차이 난다. 재정부담도 내년부터 누리과정은 교육청이 전담해야 하지만 지자체는 무상급식 예산의 45% 내외만을 부담할 뿐이다. 지자체의 재정위기를 무상급식에서 찾는 것은 정치적 논리 이상의 의미를 찾기 힘든 셈이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복지공약의 홍수를 막고 제도적인 재원적 근거를 확립하기 위해 '교육복지특별회계법' 제정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 교육복지 수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분야에 대해 법제화 등을 통한 예산 근거를 마련한다면 현재와 같은 파행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 일반회계에서 국가보조금을 확보하는 등 정책적 대안도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누리과정 확대나 무상급식 예산을 교부금 이외에 국가의 일반회계에서 별도로 국가보조금으로 각각 확보하는 내용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재원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공약을 도외시하는 사회적 여론이 확산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