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수입차를 사면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고 소비자는 국산차를 우선시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에서 완전히 벗어났어요. 오히려 수입차 구매층이 젊어져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재희(53)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회장은 최근 들어 수입차 시장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수입차 회사 입장에서는 우리나라가 일종의 시험대(테스트 베드)로 인식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올해는 수입차 시장이 개방된 지 25년이 되는 해다. 수입차 업체를 대표하는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회장으로 지난 3월 포드코리아 정재희 사장이 취임했다. 그를 만나 달라진 수입차 시장과 앞으로 변화될 모습, 수입차협회의 역할에 대해 들어봤다.
정 회장은 3월 임기 2년의 수입차협회 수장에 오르자마자 굵직한 행사들을 치르느라 상반기를 정신 없이 보냈다. 정 회장은 "5월 열린 부산국제모터쇼를 성황리에 마쳤다. 포드코리아도 올해는 처음으로 참가할 정도로 수입차 브랜드의 참여도가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2010년 참가 업체가 없어 '반쪽짜리 행사'가 됐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분위기였다. "부산시장도 처음에는 염려하셨는데 부스를 다 돌아보시고는 고무되셨습니다. 전부 들러보느라 시간이 오버될 정도였으니까요."
정 회장은 부산모터쇼를 마치고 바로 내년에 있을 서울모터쇼를 챙기고 있다. 그는 "다가올 서울모터쇼는 규모가 커지고 위상도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킨텍스가 확장돼 2관까지 넓어지면서 관람객도 내년에는 좀 더 넓은 규모에서 편하게 볼 수 있게 됐고 수입차 업체 입장에서도 신청에 비해 전시공간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일은 사라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는 더 많은 수입차 업체를 참여시켜 서울모터쇼를 국제적인 모터쇼로 한 단계 발전시킬 계획이다.
지난달에는 '수입차 개방 25주년 기념 간담회'도 가졌다. "올해 수입차를 들여온 지 25년 된 것이 협회 차원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며 "앞으로 수입차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수입차 시장이 성장하면서 협회의 역할은 더욱 커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미쓰비시와 시트로엥 등 2개 브랜드가 국내 시장에 다시 선보였고 이탈리아 브랜드 피아트가 내년 초 국내 진출을 선언했다. 현재 회원사는 16개. 회원사가 많아지다 보면 이해관계가 상충될 수 있는 부분이 발생한다.
정 회장은 "이해관계가 전부 다릅니다. 브랜드마다 입장도 다르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은 크게 어긋나지 않으니까 협회 차원에서는 시장 개방에 관련된 창구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비관세 장벽과 같은 부분에서 대륙 간 규정 차이 때문에 서로의 입장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 차원에서 조화로운 게 어떤 것인지 협회가 판단해 조율하겠다는 의미다.
10년 넘게 수입차 업체 대표로 지내온 그에게 국내 사업 환경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물었다. "지난 25년을 돌이켜보면 외환위기 같은 경제 환경 변화 등에 따라 어려운 적도 있었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내성이 생겨 극복하는 방법도 알게 됐다"고 회고했다.
최근 5년간 수입차 시장이 거의 2배 가까이 성장하면서 소비자의 인식이 몰라보게 달라진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수입차를 바라보는 시각이 국산차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비즈니스 환경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아쉬운 부분도 있다.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자동차 산업의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 그는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뒷받침인 수출을 통한 경제성장을 추구하다 보니 수입이 늘어나는 부분을 수출 감쇄 효과로 보고 수입차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다"고 해석했다. "한국에서 안방을 내주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데 큰 차원에서 봤으면 한다. 이제야 수입차 점유율이 10%가 됐는데 (국내에서) 4~5% 내줘도 (해외에서) 40~50% 먹으면 된다. 우리는 100만대 규모의 시장인데 글로벌 환경은 6,000만대가 되니까 관점의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말을 꺼낸 김에 정부에 대한 속내도 드러냈다.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많은 부분, 특히 관세 외에 비관세 분야가 많이 오픈됐지만 아직까지 자동차 관련 규정은 국내 규정이 어느 한쪽을 조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며 "어떤 것은 미국 규제를 따르고 어떤 것은 유럽 규제를 따르면서 통일되지 못하다 보니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회장은 한국 시장이 수입차에 매력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중국의 성장폭이 더 크기는 하지만 한국은 소비자의 선택이나 입맛이 상당히 까다롭고 요구하는 것도 많다"면서 "한국에서 성공하면 다른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수입차 입장에서는 한국이 일종의 '테스트 베드'로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에서 일부 수입차 브랜드는 다른 나라보다 한국에서 신차 출시를 먼저 해 반응을 살핀 후 다른 나라에서 판매할 때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의 수입차 역할론에 대한 의견도 피력했다. "여러 성능의 차, 환경적으로 좀 더 앞선 차를 수입차가 먼저 도입하고 알려왔다. 디젤차도 수입차가 먼저 시작해 끌고 가니까 국산차도 무시할 수 없게 됐고 하이브리드도 마찬가지다. 수입차가 들여오면서 앞서가니까 (국산차도) 같이 나와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현대ㆍ기아차를 비롯한 국내 브랜드에도 수입차가 먼저 개척한 부분에 대해 같은 역할을 기대하면서 함께 발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수입차 브랜드에서 다양한 차를 소개하면서 소비자가 이를 접하고 자동차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가 자극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정 회장은 앞으로 수입차 시장의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며 이탈리아를 예로 들었다. "이탈리아에 메인 브랜드로 피아트가 있고 우리나라는 현대ㆍ기아차가 독점적"이라며 "수입차 비중이 70% 정도인 이탈리아까지는 아니어도 한국도 수입차에는 당분간 성장 여력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시장이 지금까지와는 달라진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까지는 수입차 전체로 보면 프리미엄 브랜드에 집중돼 시장이 커왔는데 앞으로는 저변을 넓히는 브랜드나 차종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2,000㏄ 미만 차량의 비율이 예전에는 25%도 채 안 됐지만 올해 50% 가까이 늘어난 것도 마찬가지 이유로 해석했다. 정 회장은 "그만큼 수입차를 두고 단순히 큰 차, 비싼 차라고 인식했으나 국산차와 동일하게 보는 부분이 늘어난 것 같다"는 반응이다.
국내 수입차 회사가 사회적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며 협회에서 적극 나설 계획도 밝혔다. "모터쇼 같은 것은 기본이고 각 브랜드별로 해오던 기부나 장학금 전달 등의 활동도 지속돼야 한다. 정부와 리콜이나 환경 부분에서 세미나도 열겠다. 선진국의 전문가들을 불러 정부 관계자들과 자동차 환경에 대해 협의하는 자리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고객이 수입차에 가장 큰 불만으로 제기하는 AS 문제도 협회 차원에서 적극 개선해나갈 방침이다. "각 브랜드 차원에서 하겠지만 소비자가 느끼는 비용 문제, 수입차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협회도 노력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협회 회장을 맡고 5개월여가 지난 그는 "앞으로 잘하겠다"는 말을 거듭했다. 원론적인 답변이면서도 가장 힘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정 회장은 "포드에서 20여년 일을 해왔는데 포드 사장으로, 수입차 협회장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며 "협회 자체의 기본 목적에 맞게 앞으로 수입차 시장이 발전하는 방향으로 협회의 역할도 손보고 새로운 방향도 찾아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20년째 포드맨… 영업·마케팅 총괄 한국시장 성공 진출 주도 김광수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