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새 아침이 밝았지만 북녘 땅은 희뿌연 안개에 감싸인 채 좀처럼 속살을 드러내지 않는다. 37년간 '김일성 조선'을 호령해온 제2대 군주가 사라진 북한에서 누가 진짜로 국정을 결정하고 군을 명령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김정일 위원장을 '불세출의 영도자이자 천출명장이시며 자애로운 어버이 수령'으로 떠받들면서 특권을 누렸던 사람들의 머릿속을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다. 젊은 황태자의 운명을 정확하게 예언할 수 있는 족집게 점쟁이도 없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과 보이는 사진들만을 놓고 보면 김경희ㆍ장성택ㆍ리영호ㆍ김정각ㆍ우동측ㆍ최영림…, 이런 사람들이 새 군주를 옹립하는 실세 후견세력인 것 같다. 애도기간 동안 이들이 앞장서서 김정은 체제의 제도화ㆍ정당화를 서두를 것 같다. 하지만 이후 북한의 향방은 일단 불확실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론적으로는 김정은 체제의 안착, 집단적 섭정체제, 집단지도체제, 권력투쟁, 혼란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이럴 때마다 정치학자들은 한줌의 지식을 토대로 이런저런 예언을 하도록 강요당한다. 하지만 유력한 시나리오는 있어도 확실한 것은 없다. 미국에 수천명의 러시아 전문가들이 있었지만 1991년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소련)의 와해를 알아맞힌 사람은 없었다.
김정일 위원장이 돌연 세상을 뜨자 많은 정치학자들이 실망스러운 담론을 쏟아냈다. 어떻게든 김정은 후계자가 3대 군주로 등극할 것이라는 예측은 일단 설득력이 있다고 치자. 이제부터 그와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지금까지의 대북정책을 180도 바꿔야 한다며 난리를 쳤다. 남북경색의 모든 책임은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에 있으므로 조건 없는 지원과 관용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라는 주문을 쏟아냈다.
김 위원장이 없는 북한을 바라보면서 쏟아내는 담론이 그 수준에 그친다면 실망스럽다. 인권 부재의 땅에서 궁핍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한다면, 고향 땅 밟아보기를 소원하며 노구를 지탱하는 실향민들과 두고 온 가족을 그리며 눈물짓는 탈북자들을 배려한다면, 그리고 천안함ㆍ연평도 도발로 숨져간 아들을 가슴에 묻고 울지도 못하는 어머니들을 생각한다면 모든 것에 앞서 북한의 변화부터 촉구해야 옳지 않은가. 북한을 정상국가로 변모시키기 위해 햇볕정책에서 '원칙있는 대북정책'에 이르기까지 안 해본 것이 없는 대한민국이 무슨 죄가 그리도 많아 우리끼리 손가락질하며 잘잘못을 따져야 하는가.
어차피 더 잘사는 우리가 더 넓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정부가 열린 마음으로 관계 개선을 시도해야 할 때라는 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생각이 깊은 정치학자들이라면 이 방송국, 저 방송국을 돌면서 내 정부를 질타하는 자학론(自虐論)만 퍼뜨리고 다녀서는 안 될 일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향한 우리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북한의 변화가 더 절실하다는 우선순위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통일 대비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면서 통일을 기다리며 눈물짓는 사람들에게 희망도 줘야 한다. 군인들에게는 북한의 정세가 불확실하니 만변(萬變)에 대비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북녘을 향해서는 "하루속히 불확실의 안개를 걷어내고 새 출발을 하라"고 권해야 한다. "통영의 딸들을 돌려주고 아버지의 눈물을 닦아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피묻은 손을 씻고 함께 상생과 통일의 길로 들어서야 할 때"라고 외쳐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핵무기를 내려놓고 국제사회로 나와야 할 때"라고 울부짖어야 한다. 그것이 임진년 새 아침에 김정일 위원장이 없는 북한을 바라보면서 이 땅의 정치학자들이 외쳐야 할 고함이다. 이런 외침에 무슨 진보가 있고 보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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