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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 독립성 스스로 포기" 쓴소리

FRB 물가보다 단기처방 치중 연속적인 양적완화 결과 초래<br>정치권·행정부에 예속될땐 거시경제 충격 대응 못해<br>"재무부와 공조 당연" 지적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맨체스터 그랜드하이야트호텔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가 지난 4일(현지시간) ‘중앙은행의 독립:실제 또는 신화’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개최되고 있다.

왼쪽부터 멜처 카네기 멜런대 교수,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교수

올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창립 100주년을 맞아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에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독립성 문제에 대한 논란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금융위기 이후 FRB의 통화정책이 행정부의 재정정책과 연계돼 단기적인 시각에서 실행되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반면 위기상황에서 재무부와의 공조는 당연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다만 양쪽 모두 위기상황이 아니라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보다 확고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4일(현지시간) 열린 '중앙은행의 독립:실제 또는 신화' 토론에서 피터 왈리슨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은 "2002년에 이미 주택시장에 버블이 시작되고 있는 상태였음에도 FRB는 정치적 이유에서 2003년 이후에도 저금리를 지속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FRB의 정치적 행보는 결국 주택 버블로 이어져 미국 경제를 수렁으로 빠뜨렸다고 비판했다.

FRB가 장기적인 물가안정보다는 단기적인 경제현상을 개선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FRB 역사의 대가로 평가 받는 앨런 멜처 카네기멜런대 교수는 "FRB가 장기적인 인플레이션 안정보다는 단기적인 면에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며 "이것이 연속적인 양적완화(QE)의 결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벤 버냉키 의장이 그동안 누구도 갖지 못했던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며 4년 만에 FRB의 자산이 350%나 증가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설명했다. 멜처 교수는 FRB가 자산을 매입하는 데만 열중했지 앞으로 이를 어떻게 처분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전략이 없다고 우려했다.

5일에도 'FRB 100년의 회고'를 주제로 FRB의 통화정책을 평가하는 토론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는 재정정책은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중장기적인 성격이 강해 거시경제의 충격이 왔을 때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독립적인 기관에 통화정책을 맡겨 독자적인 권한을 갖고 정책을 펼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통화정책이 재정정책의 일부로 예속될 경우 거시충격에 대한 대응을 할 수 있는 도구를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불러드 총재는 특히 유럽중앙은행(ECB)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통화정책의 '재정화(fiscalization)'라고 규정하고 이것이 ECB의 리세션 대응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통화정책 운용의 틀인 '테일러 준칙'을 정립한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법적으로 FRB의 독립성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금융위기 이후 FRB가 스스로 정치적 독립성을 포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앙은행 독립성을 입법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역할을 해온 FRB의 입장을 옹호하는 입장도 나왔다. FRB 부의장을 역임한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교수는 금융위기 과정에서 중앙은행이 재무부와 협력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재무부와 중앙은행 간에 분명한 경계가 그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정치인들과 중앙은행이 생각하는 시간 개념이 달라 정치인들은 선거가 다가오면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기를 원하지만 중앙은행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물가를 관리해야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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