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구동장치와 동력전달 장치 등 핵심기술 관련 특허를 무료로 공개하겠다" 프리미엄 전기차 생산업체인 미국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지난 6월 폭탄 발언을 했다. '특허가 돈'이고 '기술이 권력'인 시대에 자사 특허를 무상으로 공개하겠다는 선언에 관련 업계는 적지 않게 술렁였다. 평소 머스크는 테슬라의 전기차를 카피한 '짝퉁'을 제조하는 업체가 있어도 소송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터라 이번 발언도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겠느냐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 외에도 온라인 결제서비스 업체 '페이팔(PayPal)'과 민간 우주로켓 발사기업 '스페이스엑스(SpaceX)'를 연이어 성공시킨 괴짜 CEO 일론 머스크의 치기 어린 오만 아니냐는 냉소 어린 시선도 있다.
하지만 이번 발언의 이면에는 또 다른 노림수가 있어 보인다. 지난해 전 세계 자동차 수요 8,000만대 가운데 친환경 차량의 점유율은 2% 남짓이었고 이 중 전기차는 10만대 수준에 불과했다. 미국 전역에 전기차 충전소를 짓고 화석연료 자동차의 시대를 끝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던 머스크의 기대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치임이 분명하다. 결국 테슬라로서는 기술력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는 대신 다른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시장 진입을 유도함으로써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우겠다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수년간 국내외 언론을 장식하며 화제를 모았던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을 생생히 지켜본 사람들의 눈에는 의아해 보일 수 있지만 테슬라로서는 무척 전략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기술'은 개발한 사람이 '독점'해야 한다는 생각이 상식처럼 통용되지만 삼성과 애플의 소송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면서 고객이 아닌 변호사와 로펌 좋은 일만 시켰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테슬라의 이번 결정은 무척 신선하다.
경쟁이 아닌 지식 공유와 협력을 통해 파이를 키우려는 접근은 국내에서도 이미 시도되고 있다. 해외 플랜트 엔지니어링 시장에서 지나친 출혈경쟁과 저가수주로 홍역을 치렀던 국내 건설업계는 최근 컨소시엄 등을 통한 공동수주를 늘리고 설계 및 운영관리 분야의 노하우와 시장정보 등을 공유하면서 한결 높아진 수익성을 보이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간 기술협력 확대도 해외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샤오미'로 대표되는 중국계 스마트폰 업체들의 부상이 화제가 되는 가운데 삼성과 애플이 미국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진행하고 있는 특허소송을 상호 철회하기로 합의했다는 반가운 뉴스가 있었다. 글로벌 기업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특허분쟁·반덤핑 등 법적분쟁이 늘어나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
기업 간 경쟁의 최종 승자는 법원이 아니라 고객과 시장이 결정한다는 점이다. 테슬라는 '경쟁'이 아닌 '협력'을 선택했다. '기술'을 내주고 '파이'를 키우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 특허 공유 선언이 전기차 시대를 앞당기는 '신의 한 수'가 될지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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