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일상적인 공간이 된 요즘은 일반인·유명인의 여부와 관계없이 기록과 보여줌이 소통의 대세가 됐다. 하지만 언어적 소통이 휘발성인 것과 달리 사이버 공간에서의 소통은 매 순간 문자와 이미지로 정보통신망에 남겨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양날의 칼'이 되기도 하는 이러한 소통 방식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록과 보여줌'은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인간의 욕구를 채워주기도 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 우리의 미래를 겨누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주홍글씨처럼 남아 있는 과거의 부적절한 언행이나 사적 일상의 노출, 심지어 조작된 악성 루머로 고통받고 있고 온라인상의 흔적을 지워준다는 디지털세탁소를 찾는 사람이 매월 3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과연 우리 중 누가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정보가 시공을 초월해 인터넷을 떠도는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지난해 유럽사법재판소(ECJ)가 '구글 검색에 링크된 자신의 기사를 삭제해달라'는 네티즌의 요청을 받아들여 '잊힐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일본도 최근 이와 유사한 결정을 내리고 '잊힐 권리'의 인정과 보장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학계를 중심으로 '잊힐 권리'에 대한 법제화 필요 주장과 함께 현행 정보통신망법상 인정되는 정보의 삭제 등을 위한 동의 철회 및 임시조치로도 충분하므로 법제화는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양립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우려와 염려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우리도 '잊힐 권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찾는 논의를 보다 본격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네트워크 접속에서부터 개인의 정보를 제어하기 어려운 초연결 사회에서 적정한 개인정보 보호의 수준과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우리 사회에서 허용 가능한 '기록과 보여줌'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 충분한 검토와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새로운 정보통신기술(ICT) 환경에 부합하는 개인정보의 포괄적 보호 범위와 틀의 재구성 없이 개별적 규제와 산재된 법령으로 갈등과 혼란을 증폭시켜서는 곤란하다.
또 정보주체,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 개인정보 처리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역할과 책임도 변화될 ICT 융복합 환경에서 논의돼야 한다. '표현의 자유'와 같은 다른 권익과의 충돌을 최소화하고 악용 소지를 방지하는 꼼꼼한 보완책도 필요하다. ICT 산업 진흥과 짝을 이루는 다른 하나의 바퀴가 바로 개인정보 보호라는 점에서 '상생하는 합의의 도출'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하다. 법제화 필요성에 대해 장기간의 논의가 필요하다면 사업자 가이드라인과 같은 가벼운 제도적 장치에서부터 시작해볼 일이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미래 사회의 방향에 해답이 될 가치 기준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인류는 인간의 의지대로 과거와 오늘을 만들어왔고 미래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기술의 무한 확장이 초래하는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과 기술의 조화로운 공영의 가치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기술적 편의주의와 상업적 안락함에 의해 인간의 존엄성은 불식간에 실종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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