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영국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의표를 찌르는 선택을 했다. 유명한 정치인도, 성공한 기업가도, 천재 연구자도 아닌 'You'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사회를 이끄는 주인공이라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당시 타임지는 한국 주부 등 보통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이들은 단순히 세상을 바꾼 게 아니라 세상이 변화하는 방식을 바꿨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잊고 있었던 작은 영웅들의 재발견이었다.
△사람들은 최고가 존재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뒤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한다. 18세기 스코틀랜드 외과의사인 제임스 린드는 아메리카대륙 원주민들이 전해준 '아메다'라는 나무로 약을 만드는 방법을 습득한 덕분에 '괴혈병 치료법 발견자'로 기억된다. 임진왜란 때 23번 싸워 23번 이긴 이순신 장군은 탁월한 지략과 인품, 충성심과 리더십으로 '불멸의 성웅(聖雄)' 반열에 올랐으나 열심히 노 젓고 포와 활 쏘던 무명 병졸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1등만 기억된다. 평생 배운 게 무조건 최고에 올라야 한다는 것이었으니 그럴밖에. 금메달만 강요받는 운동선수는 더 말해 무엇하랴. 은·동메달을 따고도 웃지 못하고 시즌 최고 성적을 낸 선수조차 '잘했다'보다 '아쉽다'는 평가를 받는다. "네덜란드 선수들이 동메달을 따고 너무 좋아하는 게 참 부러웠고 슬펐다"는 빙속 여제 이상화의 한마디가 비수처럼 와 닿는다.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결승이 열리던 18일. 관중석의 이상화가 든 플래카드의 문구가 확 들어왔다. '금메달이 아니어도 괜찮아. 이미 당신들은 최고.' 눈가가 젖어왔다. 1등에만 환호하던 속물근성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잊고 있었다. 올림픽 때만 보이는 반짝 관심에도, 제대로 된 연습장과 장비가 없어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달린 선수들의 모습 그 자체가 감동인 것을. 이제 대한민국 선수단에게 우리가 말할 차례다. 나라를 위해 땀 흘린 당신들이야말로 금메달보다 값진 최고의 존재라고.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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