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친일을 넘어 일본에 아첨하는 단계다.' 중국사회과학원 대만연구소 왕젠민 연구원의 말이다. 정말 그럴까. 전체는 아니더라도 일부의 친일 성향은 분명하다. 지난 7월 대만 행정원이 식민지시절 표기를 '일치(日治)'에서 강점의 의미가 보다 뚜렷한 '일거(日據)'로 바꾸자 야당인 민진당과 학계 일부에서 '일거는 중국 중심의 시각'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물론 반일도 적지 않다. 일본의 패전일인 지난달 15일 수도 타이베이에서는 대규모 군중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진과 욱일기, 종이로 만든 이지스함정을 불태우며 격렬한 반일 시위를 벌였다. 한 나라에서 존재하는 친일과 반일은 대만 토박이와 본토 출신 간 차별과 차이에서 갈라졌다. 1947년 장제스 총통의 국민당 정권이 원주민 2만여명을 학살한 2ㆍ28사건 이후 불거진 본ㆍ외성인 간 갈등이 여전하다. 원주민들을 지지기반으로 삼으며 집권시절에는 일본과 준군사 동맹 추진설까지 나돌았던 민진당의 친일 성향도 괜히 생긴 게 아니다.
△태생적으로도 대만은 친일이 어색하지 않다. 포르투갈 탐험대에 의해 16세기 말 '아름다운 섬'라는 의미의 '포모사'로 불리던 대만을 점유하던 네덜란드를 1661년 몰아낸 정성공(鄭成功)이 일본 혼혈이다. 중국에서는 멸청복명(滅淸復明)을 꾀한 충신이자 서구 침략자를 물리친 한족(漢族) 영웅으로, 대만에서는 국부로 추앙 받는 정성공은 명나라 관리인 동시에 해적ㆍ무역상인 부친과 일본 하급무사의 딸 사이에서 태어나 일곱 살까지 '후쿠마쓰(福松)'라는 이름으로 나가사키에서 자랐다.
△태평양전쟁이 끝났어도 '포로가 되면 짐승 같은 영국과 미국(귀축영미ㆍ鬼畜英米)에 잡아 먹힌다'라는 일제의 선전에 미혹된 나머지 정글에서 숨어 지내던 일본군 중에 가장 늦게 발견(1974년 11월)된 테루오 나카무라도 대만 고사족(高砂族) 의용대 소속의 이광휘(李光輝)였다. 대만 친일파들은 아직도 일본 식민통치로 대만의 발전 기틀이 잡혔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일본 극우의 인식과 똑같다. 어디 대만뿐이랴. 한국에도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관변학자가 없지 않다. 정성공처럼 일본 피라도 섞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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