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처음으로 40%대 아래로 떨어졌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는 최근 조사(12월 둘째 주)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수행 지지도가 전주에 비해 6.6%포인트 하락한 39.7%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지난 정부 내내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였으며 곧바로 대선 후보가 됐기 때문에 이처럼 낮은 '성적표'를 받아본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지를 바꾸지 않는 30% 안팎의 절대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여권에서는 이 조사 결과를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치인에 대한 여론 지지도는 조사 기관마다 결과에 상당한 편차가 있고 중요한 사건·사고 등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계절성'이 커 한 차례 조사만으로 추세를 단정할 수 없다. 특히 조사 기간이 정국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청와대 비선(秘線) 국정개입 의혹인 '정윤회 문건 파문'의 진실공방이 한창이던 때였기 때문에 청와대로서는 억울할 수도, 애써 의미를 두지 않을 수도 있다.
권부의 깊숙한 곳에서 진행되는 파워게임은 실체와 관계없이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엿보고 싶은 일반의 호기심은 언론 보도 외에도 시중의 시시콜콜한 얘깃거리까지 낱낱이 추적해간다. 언론은 또 이 같은 요구에 따라 발 빠르게 움직였다. 박지만 EG 회장의 검찰 출두과정에 대해 그가 자택을 나와 검찰청사에 도착하는 동선(動線)에 어디를 들러 누구를 만나고 어떤 차량을 이용했는지까지 상세하게 보도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만 56세 생일날 검찰 조사를 받은 것까지 알게 됐다. 그러나 보도를 아무리 꼼꼼히 봐도 디테일(세부사항) 몇 가지를 건진 것 외에 사건의 본질인 국정개입 여부는 오히려 오리무중이다. 몇 개 사건의 인과관계와 의혹이 제기되고 불행한 자살사건까지 더해졌지만 실체는 더욱 미궁에 빠진 셈이다. 오히려 권력 실세의 '국정개입'이라는 엄청난 제목을 뒷받침하는 사실관계는 허무한 수준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번 사건과 연계된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은 더욱 불길하다.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아끼는 동생 부부의 청와대 방문조차 막았는데도 '찌라시 수준의 얘기로 나라 전체가 흔들'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박 대통령의 국정동력이 시나브로 새나가고 있는 셈이다.
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금부터 선거가 없는 내년 한 해가 한국 경제의 명운을 가를 '골든타임'이라고 말해왔다. 최근 한국 사회를 특징 짓는 51대49의 팽팽한 '진영 논리'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선거라는 악재가 없기 때문에 이 기간에 제대로 해보자는 자기 최면이었고 국민과 정치권을 향한 협조 요청이기도 했다. 물론 여기에는 여권 핵심부의 국정운영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제 발밑이 허물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빨리 수습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골든타임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조종(弔鐘)이 울리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수습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일단 이번 사건의 진실은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이와는 별개로 국정 시스템과 운용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 박 대통령의 국정 운용 방식에 국민들의 불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식의 출발이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공론화되고 있는 재벌의 황제경영 개혁방안과 마찬가지로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인적 쇄신도 필요하다.
얼마 안 있어 집권 3년 차를 맞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위해 하는 얘기가 아니다. 실체조차 모호한 상태에서 소모적 정치 공방으로 국론 분열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국정에 대한 무한책임을 숙명적으로 안고 있는 박 대통령만이 꼬일 대로 꼬인 매듭을 잘라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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