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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이 판결] <14> 골드뱅킹 과세

"파생상품 아닌 실물거래" 비과세 판결 잇따라

자본시장법 시행 따른 稅부과에 은행·투자자들 행정소송 제기

3건 모두 1심서 "과세는 부당" 소득세법 확대 해석에 제동

개인투자자 A씨는 2008년부터 이른바 '금통장'으로 불리는 골드뱅킹에 투자했다. 골드뱅킹은 은행 계좌를 통해 금을 거래하는 금융상품을 말한다. 고객들이 현금을 금통장에 입금하면 은행이 입금 금액에 해당하는 금을 그램(g)으로 환산해 통장에 기재한다. 나중에 고객이 찾을 때는 금 실물이나 금 시세에 해당하는 현금을 받을 수 있다.

은행을 끼고 투자하면서도 금 실물 거래와 같이 비과세인데다 수수료도 1%대에 불과해 실물 거래에 비해 3~4%포인트 낮고 0.01g의 소량도 거래할 수 있는 점 등이 A씨가 골드뱅킹 투자를 결심한 이유였다. 다행히 투자 이후 금 시세가 올라 A씨는 천만원대 매매차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2011년 예상치 못한 세금폭탄이 날아왔다. 세무서에서 골드뱅킹은 실물 거래와는 다른 파생상품에 해당하는 투자이기 때문에 배당소득세와 종합소득세를 내야 한다고 고지해온 것이다. A씨에게 부과된 세금은 종합소득세만 1,600만원에 이르렀다.

당황스럽기는 은행도 마찬가지였다. 은행은 골드뱅킹이 금 실물 거래와 다름없는 금융상품으로 보고 고객들이 올린 매매차익에 대한 배당소득세를 원천징수하지 않았는데 세무서는 1억5,300만원의 배당소득세를 내라고 은행에 알려왔다.

새로운 금융 상품이 나오면 그 상품에 대한 과세 여부ㆍ범위가 투자자와 금융사의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과세 혜택은 그 자체로 해당 금융상품의 장점이 되고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수익의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떼 가면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골드뱅킹은 처음에는 과세 혜택을 누린 상품이었다. 골드뱅킹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지난 2003년. 정부가 금 거래의 양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은행의 부수 업무 가운데 하나로 금 적립계좌 등의 금융상품을 개발해 판매할 수 있도록 하자 관련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은행들은 골드뱅킹에서 발생하는 소득이 '금 매매차익'으로서 과세 대상이 아니라고 홍보했고 과세 당국도 세금을 매기지 않았다. 낮은 수수료에다 은행을 통한 거래 등의 장점이 더해져 골드뱅킹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2009년 2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2010년 5월 금융위원회는 골드뱅킹이 자본시장법상 파생결합증권에 해당한다고 봤고 같은 해 11월 기획재정부는 파생상품인 골드뱅킹 거래 이익에 배당소득세를 물려야 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2009년 2월 이후 발생한 골드뱅킹 거래 이익에 대해 배당소득세를 물리기 시작했다. 세법은 파생상품에서 발생하는 소득에는 배당소득세를 물리고 있다.

골드뱅킹을 취급하던 은행과 투자자들은 이 같은 정부 지침에 반발했다. 2011년 '과세 방침의 정당성을 검토해달라'며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냈고, 여기서 청구가 기각되자 신한은행, 중소기업은행, 국민은행 등은 행정소송까지 제기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나온 서울행정법원의 판단은 은행과 투자자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지난해 8월 30일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는 신한은행과 은행 고객 111명이 서울 남대문세무서 등 세무서 33곳을 상대로 낸 세금 부과 취소 소송에서 "골드뱅킹 거래는 파생상품 거래가 아니라 금 실물 거래라고 봐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금 실물 거래에 따른 이익에는 소득세를 매기지 않으므로 골드뱅킹 거래 이익 역시 소득세를 매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골드뱅킹에 배당소득세를 물리는 게 왜 부당한지에 대해 조목조목 제시했다. 어떤 금융상품이 파생상품에 해당돼 배당소득세를 매기려면 ▦유가증권과 광산물 등의 가격 변동과의 연계 ▦미리 정해진 방법에 따라 수익을 산출 ▦집합투자에 따른 수익의 분배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골드뱅킹의 거래 이익은 금 가격의 변동과 연계돼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금 가격 변동 그 자체'이며 대표적인 파생상품인 주가연계증권(ELS)처럼 주가지수의 변동 수준에 따라 일정한 수익률을 지급하는 등의 '미리 정해진 방법'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법원은 설명했다.

과세 당국은 여러 명의 고객이 한 은행에 자금의 운용을 맡긴다는 점에서 펀드와 같은 집합투자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에 대해서도 "골드뱅킹 거래는 각 계좌별로 고객과 은행이 1대 1로 금을 거래하며 펀드와 달리 은행이 고객의 의사와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자금을 운용할 수 없다"며 일축했다.

중소기업은행과 A씨가 제기한 배당소득세 징수처분 취소 소송에서도 행정법원은 지난해 10월 4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종합소득세만 1,600만원을 내야 할 처지에 몰렸던 A씨는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올해 1월 16일 선고된 같은 소송에서도 행정법원은 원고인 국민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법조계 관계자는 "비록 1심이긴 하지만 법원이 3건을 연속해서 골드뱅킹 과세가 부당하다고 판단을 내린 만큼 상급심에 올라가도 이 같은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평가했다.

중소기업은행과 국민은행이 제기한 소송을 대리해 승소를 이끌어낸 법무법인 율촌의 김동수 변호사는 "골드뱅킹을 파생상품으로 확대 해석하면 외화예금이나 외화예금이나 금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금 등도 모두 소득세법상 파생결합증권으로 볼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며 "해당 판결은 과세관청이 무리하게 소득세법을 확대해석하려는 시도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골드뱅킹을 취급하는 한 은행 관계자는 "이번 판결이 장기적으로 올해 2월 허용된 실버뱅킹(은 적립계좌)의 상품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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