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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W] 블랙스완 피오리나



영업직 사원서 10년 만에 임원, 9년 뒤엔 HP CEO…
무리한 M&A로 주가 63% 폭락·임직원 3만명 해고…
사임 뒤 상원의원 도전했지만 경영실패 이력에 쓴맛…
공화당 대선후보 출마, 화려한 언변 등으로 인기몰이…
과거 행적에 "지도자 자격 부족" 불거져 극복 주목


"회사에 큰 손실을 입힌 칼리 피오리나(61·사진)가 (대통령이 돼) 국가에도 피해를 주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휴렛팩커드(HP) 창업자인 데이비드 팩커드의 손자이자 캘리포니아주 카멜시 시장인 저스틴 버넷은 올해 초 피오리나 전 HP 최고경영자(CEO)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출마하자 그는 미국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회사 하나 제대로 경영하지 못한 사람이 한 국가의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공화당 대선후보인 피오리나 전 CEO의 인기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가운데 HP 시절 '실패한 경영자'로 낙인찍힌 그의 과거가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피오리나는 지난 6일(현지시간) 열린 공화당 경선 TV토론회 이후 당내 지지율이 14위에서 4위로 껑충 뛰며 안팎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민주당의 유력 여성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에 대적할 공화당의 유일한 여성 후보라는 점과 토론에서 보여준 화려한 언변, 무엇보다 여성 비하 등 도를 넘는 막말도 서슴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 대한 반발심리로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그동안 낮은 지지율로 대중의 관심 밖이었던 피오리나의 과거 행적이 다시금 수면 위로 부상하며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최근 미 CNN은 피오리나가 2010년 11월 캘리포니아주 연방 상원의원에도 출마했으나 HP 문제로 결국 민주당의 바버라 복서에게 패배했던 사실을 거론하며 그가 지금은 일시적으로 인기를 누리지만 또다시 과거에 발목을 잡힐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1980년 미 통신업체인 AT&T에 영업직 사원으로 입사해 10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한 피오리나는 AT&T에서 루슨트테크놀러지 분사 작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해 유명세를 탄 후 1999년 6월 HP CEO로 전격 부임했다. 하지만 '정보기술(IT)의 여제'로 불리며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의 행보는 이후 무리한 인수합병(M&A)을 추진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수장으로 의욕에 찬 그는 2002년 회사를 키우기 위해 경쟁업체인 컴팩을 190억달러(약 22조3,915억원)에 인수했다.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 붕괴로 IT산업이 침체기를 맞은 와중에 무리한 컴팩 인수는 HP에 돌이킬 수 없는 큰 타격이 됐다. 인수 후 회사 사정이 급격히 악화된 HP는 6년에 걸쳐 3만여명의 임직원을 해고했고 회사 주가는 그의 재임기간에 63%나 폭락했다. HP의 컴팩 인수합병은 지금까지도 IT 분야에서 사상 최악의 거래로 회자될 정도다.

피오리나는 결국 2005년 2월 HP 특별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경영악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쫓겨나듯 사임했다. 심지어 그는 이 과정에서 퇴직수당 2,100만달러를 비롯해 총 4,100만달러가 넘는 거액의 퇴직금을 챙겨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지금도 피오리나는 직원들을 해고한 데 대해서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서도 컴팩 인수합병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5월 피오리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IT산업 침체기를 맞아 모든 회사가 근로자를 해고하는 어려운 시기에 HP를 맡았다"며 "CEO로서 직원에게 나가라고 한 것은 최악의 일이었지만 합병 자체는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라고 말했다. 최근에도 HP로부터 해고된 것에 대해 "기존 현상에 도전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이는 지도자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미 CNN은 지난주 TV토론회에서 HP 시절 피오리나의 과거가 언급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어떤 시점에 다시 문제가 불거질 게 확실하다고 내다봤다. 벌써 미국 내에서는 HP를 몰락으로 내몬 그가 과연 미국을 이끌 지도자의 자격이 있는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미 정계에서 한 차례 쓴맛을 본 피오리나가 어떻게 자신의 과거를 극복하고 정치적 꿈에 다가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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