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 중단과 관련한 혼란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발생한다. 만성질환으로 오랜 기간 투병하다 숨지는 환자가 연간 18만여명에 이르는데 이 중 3만여명은 의학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임종기(臨終期)에 접어들고도 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 같은 특수 연명의료를 받다 숨지는 경우다. 연명의료 중단과 관련한 법적 판단근거가 미비하다 보니 환자와 가족·의료진 모두 외부의 비난과 처벌을 우려해 연명의료를 계속하는 경향이 있다. 대법원이 2009년 국내 처음으로 연명의료 중단 판결을 내리면서 "아무런 기준 없이 의사나 환자 본인 가족들의 판단에만 맡겨두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연명의료 중단 대상과 결정과정의 공정성·투명성, 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을 담보할 특별법 제정을 더 미뤄서는 안 된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도 지난해 7월 법 제정을 권고했으나 최근 들어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다. 연명의료 중단은 생명윤리와 직결된 문제이므로 대상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중요하므로 장기기증 의사를 밝힐 때처럼 사전에 공적 기관에 의향서를 등록할 수 있는 인프라도 갖춰야 한다. 환자의 뜻을 추정할 수 없을 때 가족이나 의료진의 견해가 중요한데 경제적 사정 등의 이유로 자기결정권이 왜곡될 수 있으므로 보완장치 마련에도 신경 써야 할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