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혁신도시 건설 문제를 풀기 위한 새 정부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혁신도시’의 외형은 유지하되 성격과 기능을 완전히 바꾸기로 가닥을 잡은 것. 억지로 공공기관을 내려보내는 ‘정치적’ 방식 대신 이를 산업단지로 활성화시키는 ‘경제적’ 해법을 제시한 셈이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17일 한국표준협회 초청 조찬간담회에서 “혁신도시 등 지방발전정책이 실질적으로 작동해 실효성 있게 추진하는 방향으로 재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도 “혁신도시 계획을 재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시행하되 보완하자는 것”이라며 “지방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보완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혁신도시 축소로 예상되는 지방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정부가 구상 중인 지방 광역경제권 육성의 실현수단으로 재활용하겠다는 복안도 담겨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수조원에 이르는 추가 재정부담이 불가피한데다 수도권 규제완화와도 배치돼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껍데기만 남기고 내용은 확 바꾼다=국토해양부가 청와대에 보고한 지방 혁신도시 대응방안 보고서의 핵심은 ‘산업클러스터 기능 확대’다. 이는 125개에 이르는 수도권 공공기관의 ‘강제 이주’에 초점이 맞춰졌던 참여정부의 혁신도시 건설방안과는 확연히 차별화된다. 특히 정부는 이 같은 클러스터 기능 강화를 통해 혁신도시를 5+2 광역경제권의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포장은 ‘혁신도시’지만 사실상 ‘광역경제권 허브’로 내용물을 교체하는 셈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직ㆍ간접 지원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 정부 구상이다. 입주기업에는 세제를 감면해주고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한편 첨단산업 유치를 위해 4,700억원의 예산을 투입, 오는 2010년부터 혁신도시 내 산ㆍ학ㆍ연 클러스터용지의 절반을 정부가 매입해 장기저리의 임대전용산업단지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밖에 혁신도시 내에 외국교육기관과 특목고ㆍ자율학교를 설치하는 한편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공공기관 이전규모 대폭 축소될 듯=새 정부가 혁신도시 건설방향을 이처럼 전환하면서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대폭 축소 또는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당장 정부가 공기업에 대한 대대적 수술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주요 수술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한국전력ㆍ토지공사ㆍ주택공사 등은 지방 이전 대상 공기업의 핵심이다. 공기업 구조조정 결과에 따라 지방 이전 대상 기업들의 배치계획도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한구 정책위의장도 “공기업 유치는 해당 도시가 맡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공기업) 유치가 안됐을 경우 유인대책을 만들거나 다른 대책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해 공기업의 ‘강제 이주’ 계획 철회를 시사했다. 민영화 문제 역시 걸림돌이다. 국토부는 보고서에서 지방 이전을 전제로 민영화ㆍ통폐합을 추진한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마저 비현실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통폐합ㆍ민영화 자체에 대해서도 커다란 반발이 예상되고 있는데 지방 이전을 전제로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말했다. ◇수도권 규제 풀면서 지방 활성화(?)=혁신도시를 광역경제권의 거점으로 활용하겠다는 정부 대안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수도권 규제 완화라는 정부의 정책 방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민간기업의 한 관계자는 “돈과 사람ㆍ기술이 모두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데다 규제까지 푼다는데 과연 지방에 클러스터를 조성한다고 내려가려는 기업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여기에 수도권의 산지ㆍ농지 규제를 풀어 싼값에 생산용지 등으로 제공하겠다는 정부 방침까지 발표된 상황에서 클러스터 조성을 통한 기업 유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정부의 재정부담도 풀어야 할 과제다. 싼값에 산업단지를 조성해 공급하려면 그만큼 정부 재정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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