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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갑작스런 병가로 경영공백 우려가 제기되면서 미국 기업들의 불확실한 경영승계 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주주들은 잡스 CEO의 예상치 못한 공백이 애플 주가에 큰 악재로 작용한 점 등을 들며 주주 보호를 위해 경영승계를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진행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8일 파이낸셜타임스(FT)은 애플 주주 가운데 하나인 일리노이주(州) 노동자 연금기금이 최근 애플 이사회가 후임 경영진으로의 승계상황을 매년마다 공개, 보고하도록 요구했지만 애플 측이 이를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애플 주주들은 평소 애플의 불분명한 경영승계 계획에 대해 불만을 품어 오다 잡스 CEO의 갑작스런 병가 소식에 18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애플 주가가 장중 6.5% 급락하는 등 혼란을 겪자 우려와 불만이 증폭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 기업들에게 경영승계에 대한 불확실성 제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미 투자자문기관인 기관투자가서비스(ISS)의 패트릭 맥건 이사는 “아마 올해 10개 가량의 기업이 애플처럼 주주로부터 경영승계 과정에 대한 공개를 요구를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미국에서는 지난 8월 휴렛팩커드의 CEO인 마크 허드와 사라 리(식품기업)의 브렌다 반스의 전격적인 퇴진, 지난 12월 화이자(제약업체)의 제프 킨들러의 급작스런 사임 등을 거치며 후계구도에 대한 사전준비 주장이 힘을 얻어왔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지난 2009년 기업들이 후계구도 과정을 더욱 공개토록 하는 법적장치를 마련한 바 있다. 하지만 리서치전문업체인 콘 페리가 지난 12월 1,300여개의 미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현재 35%만이 차기 CEO 인선계획을 세워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응답자의 30%(350명)는 지난해부터 계속된 CEO들의 갑작스러운 사퇴가 경영승계 계획을 미리 수립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미 경제전문 매체인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한 세대가 다른 세대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충분한 계획이 없으면 승계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 금융회사들 중에서 올해 경영승계와 관련해 가장 큰 관심을 끌고 있는 버크셔해서웨이와 JP모건은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가는 것으로 평가된다. 버크셔해서웨이를 이끄는 워런 버핏은 이름만 공개하지 않았을 뿐 일찌감치 차기 CEO 후보로 4명으로 압축해 둔 상태.이들의 경영실적 등을 평가해 최종 낙점한다는 게 버핏의 후계구상이다. 버핏은 은퇴 계획을 구체적으로 거론한 적은 없지만 올해 80세(1930년생)의 고령을 감안하면 후계구도 가시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해마다 5월 주주총회 때면 후계자 구도가 완성될 지 여부가 최대 관전 포인트가 된다. 반면 올해 55세의 제이비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지난해 9월 일찌감치 은퇴계획을 시사했다. 그는 “이미 출구전략을 짜놓았다”며 “승계과정을 시작하기에 좋은 때”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제스 스탤리 당시 JP모건 자산관리부문 대표를 투자은행부문 대표로 임명했는데 전문가들은 사실상 자신의 후임자를 정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다이먼은 지난 1998년 씨티코프와 트래블러스의 합병으로 탄생한 씨티그룹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패해 월가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보스였던 샌포드 웨일 전(前) 트래블러스 회장의 인도로 월가에 입문했지만 그에 의해 버림 받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다이먼이 이러한 개인적 아픔 때문에 후계구도 구축을 서두른다는 얘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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