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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경제가 당초 전망과 달리 올 4~6월(일본 회계연도 1ㆍ4분기)부터 마이너스 성장에 진입하면서 하반기 들어 이미 경기침체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디플레이션 극복'을 핵심 과제로 내건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가 오는 16일 총선에서 정권을 잡은 뒤 경기부양에 확실한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 지진피해 복구와 부흥을 위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와중에도 침체에 빠질 정도로 허약한 일본경제의 체질이 드러남에 따라 앞서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관철시킨 소비세 인상계획에 제동을 걸 가능성도 높아졌다.
일본 내각부는 7~9월(회계연도 2ㆍ4분기)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수정치가 전분기 대비 -0.9%, 연율 기준으로는 -3.5%를 각각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달 발표된 속보치와 동일하지만 시장 전망치를 밑도는 수준이다. 특히 내각부는 4~6월 GDP 성장률을 기존 발표치인 0.7%(연율 기준)에서 -0.1%로 하향 수정했다. 일본경기가 당초 예상과 달리 이미 7~9월에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공식적인 경기침체기에 진입한 것이다.
더구나 일본경제는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보일 게 확실시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시장 전문가들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 결과 10~12월 일본경제 성장률이 연율 기준으로 -1.6%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고 전했다. 이날 내각부와 재무성이 내놓은 10~12월의 대기업 업황판단지수는 -5.5%에 그쳐 2분기 만에 뒷걸음질쳤다.
총선을 눈앞에 두고 디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어느 때보다 선명해짐에 따라 차기 총리로 등극할 아베 자민당 총재가 집권 초기부터 디플레이션 해소를 위한 경기부양책에 힘을 실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베 총재가 이끄는 자민당은 명목성장률 3% 달성, 물가상승률 2% 등의 수치 목표를 앞세우며 디플레이션 해소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여론악화로 한발 물러서기는 했지만 '아베노믹스'는 당초 일본은행을 통한 '무제한 양적완화'와 '건설국채 매입' 거론에서 드러난 공격적인 경기부양 기조를 특징으로 한다.
같은 맥락에서 아베 총재는 앞서 노다 총리가 관철시킨 소비세 인상에 제동을 걸 가능성도 높다. 노다 총리는 현행 5%인 소비세율을 오는 2014년 4월에 8%, 2015년 10월에 10%로 올리는 단계적 인상안을 지난 8월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하지만 재정보다 경기를 우선시하는 아베 총재가 정권을 잡은 뒤에는 소비세 인상이 계획대로 실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일찌감치 제기돼왔다.
실제 아베 총재는 9일 방송을 통해 "소비세 인상은 내년 4~6월 수치를 확인한 뒤 가을에 판단하면 된다"며 "목표는 세율이 아니라 세수를 높이는 것이므로 무조건 인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소비세 인상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성장률 3%와 인플레이션 2%를 목표로 하는 아베 총재가 당장 경기부양에 악재가 되는 소비세 인상을 당초 계획대로 실행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다.
문제는 경기부양에 정책목표를 집중시킨 아베노믹스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베 주도로 일본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는 대신 지금까지 안정됐던 국채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일본경제를 수십년 동안 옭아맨 최대의 족쇄이기는 하나 금리를 낮은 수준에 묶어둠으로써 GDP의 2배가 넘는 부채를 떠안은 일본 정부가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자금을 조달할 길을 터주는 역할도 했다는 것이다.
메릴린치재팬의 가치가와 마사유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이 디플레이션을 타파하는 과정에서 국채시장 안정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최근 점차 흑자폭이 줄어들고 있는 경상수지 동향도 국채시장에 대한 우려를 조장하는 요인이다. 이날 일본 재무성은 10월 경상수지가 9개월째 흑자행진을 이어갔지만 수출부진 등으로 흑자폭은 전년동월비 29.4% 감소한 3,769억엔에 머물렀다고 발표했다. 갈수록 위축되는 경상흑자가 적자로 돌아서면 일본은 외국에서 자본을 끌어와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 90% 이상 소화되는 일본 국채에 대한 외국인 투자 비중은 이미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WSJ는 "아베의 선거 캠페인은 일본이 디플레이션 해소에 주력하면서도 부채위기를 피할 수 있겠느냐는 중대한 질문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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