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들은 위선의 탈을 벗어라. 학장과 교수는 물론이고 수정주의의 탈을 쓴 공산당 베이징시 위원회도 봉건시대와 자본주의의 폐습에 젖어 있다.’
1966년 5월25일, 중국 베이징대학교 구내식당 동쪽 벽에 붙은 벽보(壁報)의 골자다.
벽보는 말 그대로 벽에 견해나 주장을 붙이는 의사 표현의 방식으로 춘추전국시대부터 내려온 중국 특유의 관습. 베이징대학에 붙은 벽보는 세상을 바꿨다. 문화혁명의 신호탄이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벽보라는 이름보다는 대자보(大字報)가 통칭으로 자리잡았다. 영어사전에도 ‘다치바우(dazibao)’라는 단어가 올라갔다.
철학과 주임이던 녜위안츠(聶元梓·여·당시 42세)를 비롯한 7명의 공동명의로 발표된 대자보를 중국의 권력층은 반대파 제거에 철저하게 써먹었다. 이 대자보가 나오자마자 마오쩌둥 주석은 ‘20세기 중국의 파리꼬뮌 선언서’라며 전국에 방송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마오 주석이 ‘사령부를 포격하라’는 대자보를 쓴 뒤에는 수백만명의 대학생들이 문화혁명의 홍위병으로 나섰다.
수많은 당 간부와 지식인들이 희생당한 문화혁명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다. 중국의 발전을 가로막은 마오 주석의 친위 쿠데타이자 이념적 광풍이라는 해석과 문화혁명이 없었다면 오늘날 중국의 사회적 안정과 고성장도 불가능했다는 평가가 상존한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훗날의 역사는 이를 어떻게 평가할까.
대자보는 한국에서도 친숙하다. 군사정권의 거대한 억압에 종이와 매직펜으로 맞섰던 사람들의 대자보가 기억에 새롭다. 대자보에 익숙한 386세대와 온라인판 대자보를 기반으로 권좌에 올라 고집스레 개혁을 추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는 우리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고인이 꿈꿨던 화합과 전진의 시대가 앞당겨지기를 영정 앞에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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