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들이 엔고로 인한 경영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해외 인수합병(M&A)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섣불리 인수한 해외 기업의 실적 부진으로 오히려 발목이 잡힌 기업들이 적잖이 눈에 띄고 있다. 일본의 경제주간 다이아몬드는 최신호(29일자)에서 지난 수년 동안 공격적으로 해외 기업을 인수해 온 일본 맥주업체들이 해외사업에서 대규모 투자에 부합하는 성과를 올리지 못해 투자자들의 불신을 사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사히ㆍ기린ㆍ산토리ㆍ삿포로 등 맥주업계 4개사가 M&A 등 해외사업 확대를 위해 투자한 자금은 지난 5년간 총 2조엔(29조원 상당)에 달하지만 당초 기대했던 투자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회사는 기린홀딩스다. 기린은 지난 8월 브라질 2위 맥주업체인 스킨카리올을 약 2,000억엔에 인수한 뒤 시가총액이 2,000억엔 감소하고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수 발표 직후에는 일부 주주들이 인수무효를 요구하며 현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경영진은 엔화가 강세인 틈을 타서 정체된 내수시장의 한계를 타개하기 위한 해외시장 진출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도였지만, 지난 2007년 이후 총 1조엔 이상 쏟아 부은 해외 M&A가 좀처럼 성과를 올리지 못한 데 대해 투자자들의 불신감이 폭발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린은 호주시장에서도 앞서 인수했던 유가공 및 음료업체의 경영실적이 현지의 가격인하 경쟁과 원가 상승으로 급감하는 바람에 적잖이 애를 먹고 있다. 무디스재팬은 브라질 시장 진출 이후 기린홀딩스의 재무가 악화하고 경영 리스크가 고조됐다며 회사 신용등급을 A2에서 A3로 강등시켰다. M&A컨설팅업체인 레코프사 조사에 따르면 지난 4~9월 일본 기업의 해외 M&A 건수는 전년동월비 30% 증가한 236건, 금액 기준으로는 무려 2.2배에 달하는 3조엔에 달하고 있다. 내수시장 정체로 해외에서 성장 기회를 찾을 수밖에 없는데다 전례없는 엔고 덕분에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지분을 사들일 수 있기 때문에다. 최근에는 수출주도형 대기업 뿐 아니라 내수형 기업이나 중견기업들까지 해외 쇼핑에 맛을 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아즈미 준(安住淳) 재무상은 지난 27일 참의원에서 엔화 강세가 이어지는 지금이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해 외국의 부(富)를 국내로 환원하는 시기이며 '육식계' 국가가 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기업들의 해외 M&A를 권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속되는 엔고로 'M&A 붐'이 한창인 가운데 잘못된 결정으로 인한 실패 사례나 뜻하지 않은 해외 악재 때문에 발목을 잡히는 기업들이 적잖이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의 식품업체 가고메의 경우 지난해 인수한 호주의 대표적인 토마토 가공회사 및 원료 생산업체를 인수해 완전자회사로 만들었지만, 그 탓에 올 초 호주를 덮친 수해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올 회계연도 반기결산(4~9월)에서 가고메는 국내사업의 이익 증대에도 불구, 호주 자회사의 대규모 손실누적 여파로 매출액이 4.2% 감소하고 당기순이익은 18.1% 감소하는 등 부진한 실적을 발표했다. 일본의 대표적이 제약사인 다이이치산쿄의 경우 지난 2008년 인도 의약품업체를 4,900억엔 가량에 인수했지만 1년 뒤에 평가손과 인수시 지불한 프리미엄 상각으로 3,600억엔의 특별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최근까지도 다이이치산쿄는 인도 자회사의 품질관리 문제 등으로 불확실성을 떠안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핫토리 노부미치 와세다대 객원교수는 앞서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쓴 기고문에서 "최근 일본 기업들의 인수 선호성향이 강해지고 있지만 기업인수는 30~40% 정도의 인수 프리미엄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큰 사업결정"이라며 "M&A가 실제 가치창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면밀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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